컴퓨터나 스마트폰으로 생활하고 있는
요즘 젊은이들은 사색을 하지 않고
검색을 합니다.
숙제도 검색으로 하고
친구와 밥 먹는 것도 검색으로 하고
검색하지 않으면
쇼핑도, 사랑도 못 합니다.
그러나…
저녁 노을을 보는 감동,
새가 날아가는 경이로움,
마른 가지에서 꽃이 피는 기적을
한번 검색해보세요.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뛰는 심장을
심전도로 측정할 수 없듯이
죽음의 슬픔, 삶의 기쁨을 검색해보세요.
지난 여름 사랑하는 친구와 함께
손을 잡고 해변을 달리던 때의
그 바다를 한 번 검색해보세요.
검색 결과는 없습니다.
아무 것도 말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어령박사님의 <짧은 이야기, 긴 생각> 중에서
라틴어 3대 경구로 ‘죽음을 기억하라’는 ‘메멘토 모리’, 운명을 사랑하라는 ‘아모르 파티’, 그리고 현재에 충실하라는 ‘카르페 디엠’의 지혜
이미 일어난 과거를 알려면 검색하고,
현재 일어나고 있는 것을 알려면 사색하고,
미래를 알려면 탐색하라.
검색은 컴퓨터 기술로,
사색은 명상으로,
탐색은 모험심으로 한다.
이 삼색을 통합할 때 젊음의 삶은 변한다.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마태복음 7:6-12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기도를 통해 얻을 수 있는 하나님 아버지의 축복으로 초대하십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라.” 이렇게 말씀하신 후 강조하여 덧붙이십니다.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 답: 이 큰 질문을 어찌 이 자리에서 다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명약관화라는 말이 있듯이 진실하다면, 그것이 진리라면, 사자성어로 요약하듯이 짧은 답변도 가능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저에게는 그런 능력이 없습니다. 다만 글을 쓰는 자유로운 사람이니 비유, 스토리텔링, 상상력, 추리력을 바탕으로 이야기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질문 1. 하나님의 존재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나요?
하나님이라는 말을 부모님이라고 바꿔보세요. 우리가 부모의 존재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나요. 또, 하나님이라는 말을 그 흔한 여친이라는 말로 바꿔보세요. 여친의 존재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나요. 우리는 지금까지 부모님을 믿고 살아왔지 정말로 나를 낳아주셨는지 나를 사랑하시는지 의심해온 경우는 거의 없어요. 여친도 만나는 동안 한 번도 그 사랑을 의심하거나 거짓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믿었기 때문에 관계가 이어진 거예요.
그런데 부자지간이나 연인 사이에 증명이라는 말이 나오면 이미 그건 끝난 이야기예요. 어느 날 아들이 “어머니 아버지가 정말 저를 낳으셨는지, 저를 사랑하고 계시는지 증명해보십시오”라고 한다면 ‘DNA 감정을 해주십시오’라는 말이 되고 지금까지 저를 사랑하신 것을 믿지 못하겠다는 얘기가 되기 때문에 이미 그 부모 자식 관계는 파탄 난 것입니다. 연인 사이도 똑같아요. 서로 사랑하는 사이에 어느 날 차를 마시면서 “네가 나를 정말 사랑하는지 증명해” 하면 그 관계는 끝이 난 거예요.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부모 자식 관계가 그렇고 연인 사이가 그런데 하물며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는 어떻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는 증명하는 관계가 아니라 믿음의 관계고 하나님은 믿음의 대상이지요. 그것이 바로 가족의 사랑이고 남녀의 사랑이고 종교에서 말하는 믿음과 사랑으로 이루어진 신앙의 세계인 거지요.
– 물음: 하지만 믿지 않는 자도 버릴 수는 없는 것 아닙니까. 아무리 파탄 난 관계라 하더라도 그 아들, 그 여친을 그냥 버릴 수는 없지 않습니까. 증명할 수 있다면 그들의 요구대로 증명해 보이면 되지 않을까요?
답: 이미 도마가 똑같은 질문을 했어요. 내 눈으로 보지 아니하고 손으로 만져보지 않고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겠다고 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예수님이 나타났을 때도 증명해 보이라고 했지요.
여기서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증명은 우리가 하는 게 아니라 신이 하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증명은 하나님이 하실 일입니다. 인간이 어떻게 신을 증명할 수 있겠어요. 예수님은 옆구리의 창 자국과 손의 못 자국으로 도마의 회의에 대해 증명해 보였습니다. 부활을 증명해 보였어요. 증명의 몫은 전지전능한 신보다 지능에 한계가 있는 인간이 할 일이 아닙니다.
실제로 칸트, 데카르트 등 많은 학자, 수학자, 과학자가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애썼어요. 자신이 유발 하라리가 얘기하는 호모 데우스가 된 것처럼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신을 증명하려고 한 회의론자에게 직접 하신 말씀을 그들에게 들려주면 됩니다. “눈으로 보지 않고는 믿을 수 없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자가 진정으로 행복한 자다”(요 20:29)라고요.
질문 2. 하나님은 왜 자신의 존재를 똑똑히 드러내지 않을까요?
기독교에서는 종교를 ‘릴리전(religion)’이라고 합니다. 끊어진 끈을 다시 잇는다는 뜻이지요. 또 한편으로는 정독하여 자세히 읽는다는 뜻도 있다고 합니다.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는 원죄로 인해 끊어진 관계입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실낙원이라고 하는 현실상에서, 추방당한 인간은 그 끊어진 관계가 다시 회복되어야지만 하나님을 똑똑히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육백만 유대인을 학살한 아우슈비츠를 보고 그때 대체 신은 어디 있었냐고 하지만 직접 그 수용소에서 생활한 빅터 프랭클이 쓴 『밤과 안개』를 보면 신은 오히려 아우슈비츠 같은 지옥의 극한상황에 똑똑히 나타난다는 겁니다.
극한상황 속에서는 착한 사람이 악인이 되고, 악인이라고 믿었던 사람이 착한 사람이 되지요. 먼 예를 들 필요도 없어요. 요즘 세계적으로 화제가 된 드라마 <오징어 게임> 그대로입니다. 극한상황에 놓였을 때 모든 사람이 진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신도 그 모습을 똑똑히 드러내 보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자신의 존재를 똑똑히 드러내지 않는 게 아니에요. 극한상황 속에서 릴리전, 끊어진 관계가 다시 이어지지 않으면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질문 3. 하나님은 우주 만물의 창조주라는데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습니까?
증명에 관해서는 앞의 질문에서 이미 말했습니다. 다만 하나님이 우주 만물의 창조주라는 것에 관해서만 덧붙이겠습니다. 창조주가 없다면 우주 만물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현재 우주 만물은 있지요. 그것도 그냥 있는 것이 아니라 몇 월 며칠이면 어느 별이 어느 위치에 오고 태양과 지구의 위치가 어떻게 되고 모든 것을 예측할 수 있습니다.
우주에는 우연이라고 볼 수 없는 수학적·물리적 질서가 있어요. 그것을 기획하고 만든 창조주가 없다면 질서가 있겠습니까. 우주 만물이 존재하는데 그 만물에 속성과 질서가 없다면 그것은 우연의 결과요 창조주도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만물에 속성과 질서가 있다면 어떤 신이든 그것은 그에 의해 기획된 결과지요.
갈릴레오는 지동설을 이야기했지만, 결코 신을 부정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천체 자체를 하나님이 쓴 또 하나의 바이블로 여겼어요. 모든 우주의 질서에서 하나님 말씀을 발견하고 읽어낸 것이에요. 우주, 자연 자체가 또 하나의 성경책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 자신에게는 그것이 우리가 읽는 성경보다 더 진짜 성경 같았던 거예요.
뉴턴도 만유인력을 발견하고 우주 만물이 단순히 우연에 의해 운영되지 않고 치밀한 질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신의 존재를 느끼지요. 그래서 인력을 단순히 물리적 현상이 아니라 창조주께서 만드신 사물들이 가까워지려고 하는 사랑이요 친화력이라고 보았던 겁니다.
질문 4. 생물학자들은 인간도 오랜 진화의 산물이라고 하는데 신의 인간 창조와 어떻게 다른가요? 인간도 생물도 모두 진화의 산물 아닌가요?
진화 자체가 신의 프로그램이라면 어떻게 반박할 수 있을까요. 창세기를 보면 하늘과 땅이 갈라지고 동식물이 생기고 인간이 제일 마지막에 만들어집니다. 이 모든 게 진화 과정과 거의 다를 게 없어요. 창세기에서 인간이 제일 마지막에 만들어지는데 진화론도 인간이 제일 뒤에 만들어지잖아요.
태초의 빅뱅, 혼돈 속에서 하늘과 땅이 갈라지는, 물질과 에너지가 나누어지는 순간입니다. 이후 모든 진화 과정이 그 자체로 신의 섭리요 기획이라면 어찌 반박할 수 있을까요. 혼돈에서 질서로, 그것이 바로 창조입니다. 진화도 마찬가지예요. 오늘날 DNA를 연구하는 생물학자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단지 ‘신’이라고 직접 말하지 않고 ‘썸띵 그레잇(Something Great)’이라는 표현을 쓸 뿐이지요.
기독교에서 이야기하는 인간이 실낙원에서 복낙원으로 가는 과정을 진화론과 대비해 더 구체적으로 풀이해볼까요. 초기 진화론자들은 진화의 원리가 먹고 먹히는 포식(捕食) 관계에 있는 줄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진화론 자체가 더 진화하더니, 그 원리가 포식 관계가 아닌 미셸 세르(Michel Serre, 1930~2019)가 말한 것 같은 기생(Le parasite) 관계, 숙주와 기생물의 관계에 있다는 걸 알게 되지요. 그런데 최근 학계에서 수없이 부정되고 거절되어왔던 린 마굴리스(Lynn Margulis, 1935~2011)의 포식도 기생도 아닌 ‘심바이오시스 (Symbiosis)’, 공생 이론이 인정을 받게 됩니다. 바로 그것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미토콘드리아 이론이지요. 초기 기독교인들이 함께 나누고 서로 도와주면서 산다는 ‘코이노니아(Koinonia)’와 같은 얘기지요.
기독교에서 말하는 최고의 가치가 무엇입니까. 심바이오시스, 공생이지요. 이웃을 사랑하고 서로 도우라고 하잖아요. 즉 진화의 원리는 포식과 기생이 아닌 공생으로, 기독교적 가치관과 다를 게 없습니다. 참고로 린 마굴리스는 기독교 신자도 아니에요.
질문 5. 언젠가 생명합성과 무병장수의 시대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이처럼 과학이 끝없이 발달하면 신의 존재도 부인되는 것이 아닌가요?
삼십여 년 전에 했던 이 회장의 질문은 오늘의 바이오기술 B.T, 나노와 로봇의 N.T, R.T 그리고 AI 시대를 예견한 것 같습니다. 하지만 너무 복잡한 문제라 차라리 한 편의 우스개 이야기로 답하는 편이 좋을 듯합니다. 어느 날 초능력 AI 로봇이 신에게 도전합니다. “당신이 만든 인간과 내가 만든 인간, 어느 쪽이 더 우수한지 내기를 해봅시다.” 그러자 하나님이 웃으시면서 “어디 한번 해봐라” 하고 말해요. AI 로봇은 하나님이 인간을 만들 때처럼 흙을 모아 반죽을 하려고 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잠깐, 내가 만든 흙에 손대지 마. 흙도 네가 만들어”라고 했어요. 로봇을 만드는 금속, 플라스틱 같은 원자재들은 모두 어디에서 왔어요? 지구에 있는 모든 원자재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이지요. 우리에게 주신 창조주의 선물이에요.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은 하나님은 벌하는 하나님이 아니라고 단언했다. 벌을 내리시는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이전의 옛날 이미지라는 얘기다. 예수님은 옆방에서 기침 소리가 들릴 정도로 아주 가까운 곳에 계시는 아주 친한 친구와 같은 분이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인간은 아직도 무서운 하나님, 주먹을 불끈 쥔 하나님, 심판하는 하나님만 생각하고 있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 구약 시대의 신관을 아직도 어리석은 인간들은 버리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전 장관은 “하나님은 인간의 죄를 끌어안고 포용하시며 용서하는 하나님”이라면서 “일흔 번까지라도 용서하는 그것이 인간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마음이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질문 6. 하나님이 인간을 사랑한다면 왜 고통과 불행과 죽음을 주는 걸까요?
인간의 고통과 불행은 신이 준 게 아니라 따 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범하여서 인간이 스스로 받은 벌입니다.
뱀이 뭐라고 했나요? 너도 저 선악과를 따 먹으면 신처럼 눈이 밝아지고 지혜로워진다고 했습니다. 뱀의 말은 사실이었어요. 선악과는 지식의 나무, 신만이 가지고 있는 지혜와 선악의 판단을 얻게 되는 나무입니다.
그러니까 선악과를 따 먹었다는 건 인간이 피조물이면서 조물주가 되려고 한 거예요. 이를테면 아들이 아버지가 되려고 한 것이나 다름없지요. 아버지가 나를 낳아줬는데 내가 아버지가 된다고요? 그건 패륜이지요.
내가 만든 물컵이 인간처럼 의식을 갖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나에게 물 따르지 마. 날 왜 깨지도록 만들었어. 나를 왜 쟤보다 작게 만들었어.” 내가 만든 물컵이 인간과 같은 의식을 가지고 불평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피조물이 조물주와의 관계를 부정하고 뛰어넘으려 할 때 세계는 암흑과 혼돈의 세계가 됩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날 인간이 만든 불완전한 문명에서 오는 고통입니다.
– 물음: 최후의 심판을 내리시는 하나님, 착한 자, 자기를 믿는 자만 구하시는 하나님은 인간에게 오히려 구제가 아니라 무서운 하나님으로 비칠 수도 있지요. 인간을 정말 사랑하신다면 신께서 그렇게 가혹히 벌을 주실까요?
– 이에 관해서는 그 유명한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속 일화로 답해보겠습니다. 완벽한 성인이라고 칭송받던 조시마 장로가 죽습니다. 그런데 성자는 죽어도 썩지 않는다고 믿었는데 시체가 썩는 거예요. 그래서 그를 따르던 수도사 알료샤도 큰 절망에 빠져 매춘부 그루센카를 찾아가요. 처음으로 탈선을 결심한 겁니다. 그때 그루센카가 하나님은 성자뿐 아니라 악한 자도 버리시지 않는다고 얘기해요.
나쁜 짓만 하던 사람이 길 가다 목마른 사람에게 파 뿌리 하나를 뽑아줍니다. 그리고 지옥에 가니 하나님이 불쌍히 여겨 파 뿌리 하나를 내려 지옥에서 구제해주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성자고 악인이고 다 포용하려고 해요. 인간이 끝내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거죠. 그런 깨달음을 얻고 알료샤가 다시 장로의 빈소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잠깐 졸게 되지요. 그때 꿈속에서 가나의 결혼식처럼 천국에 큰 잔치가 열린 겁니다. 보니까 조시마 장로도 있어서 “성자님, 그러면 그렇지 천국에 가셨네요!” 하고 기뻐하는데 장로가 “너도 빨리 와!” 하는 거예요. 그래서 알료샤가 “저는 착한 일은 아무것도 한 일 없어 못 가요” 하고 말해요. 그걸 들은 장로가 뭐라고 했을까요? “여기 있는 사람들 다 파 뿌리 하나야, 어서 와.”
하나님은 벌하는 하나님이 아니에요. 끌어안고 포용하는 게 하나님의 본질이지요. 재판하고 벌하는 그런 이미지는 다 예수님 이전의 옛날의 이미지죠. 오늘날 작가, 신학자 모든 사람이 생각하는 신은 심판하는 무서운 신이 아니라 우리를 구제하려는 사랑의 신이지요. 예수님의 출현입니다. 곁에 있는 신이에요. 저의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도 그렇게 쓴 거예요. 옆방에서 기침 소리가 들릴 정도로 아주 가까이에 계신 외로운 하나님. 그게 릴케와 나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아직 무서운 신, 주먹 쥔 신, 심판하는 하나님만 자꾸 생각해요. 그건 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 구약 시대의 신관(神觀)입니다.
“그때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마 18:21~22) 하나님은 용서하는 하나님이에요. 일흔 번까지라도 용서하는 그것이 인간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질문 7. 하나님은 왜 히틀러나 스탈린 그리고 갖은 흉악범 같은 악인을 만들었을까요?
이 질문을 히틀러에게 해보세요. ‘하나님은 왜 유대인 같은 악인을 만들었는가?’ 하고 역으로 질문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대신해서 내가 악인을 죽였노라’ 말할 거예요.
남북전쟁에서 남군과 북군이 기도할 때 뭐라고 할까요? 분명 ‘내가 상대하는 적은 모두 악인이오니 반드시 내가 오늘 전쟁에서 이기게 하소서’ 하고 얘기할 거예요. 남군이고 북군이고 똑같이 믿는 기독교의 하나님에게 서로 이런 기도를 하면 하나님이 누구 편을 들어야 하겠습니까.
그런데 만일 남군과 북군이 동시에 하나님을 느끼고 그 사랑과 평화의 품에 안긴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실제로 제1차 세계대전 때 독일군과 영국군 사이에 일어났던 기적과 같은 일이 벌어질 겁니다. ‘노 맨스 랜드(No Man’s Land)’, 경계선을 사이에 두고 참호 속 서로 대치하고 있었던 군인들이 함께 크리스마스를 맞이한 것처럼요.
독일 병사들이 캐럴을 부르고 촛불을 켤 때 그 소리를 듣고 영국군들이 참호 속에서 뛰어나와 함께 캐럴을 부릅니다. 그러자 독일군도 전쟁을 잊고 참호 속에서 기어 나와요. 함께 춤추고 노래하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며 전쟁은 휴전과 같은 화해의 무드로 바뀌게 됩니다.
물론 그것은 오래 가지 않았지만 분명한 기적이었지요. 그들이 같은 기독교 문화를 공유하였기에, 어린 시절 촛불을 켜고 캐럴을 부르며 하나님을 맞이했던 평화의 기억이 있었기에 그런 엄청난 기적이 가능했던 것이에요. 공감의 신이 전쟁의 신보다 크고 강했던 것입니다.
질문 8.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 속죄하기 위해 죽었다는데 우리의 죄란 무엇인가요?
지금까지 앞에서 다 다루었어요. 피조물이 조물주가 되려고 한 것. 휴브리스, 인간의 오만, 그것을 원죄라고 하지요. ‘오리지널 신(Original sin)’은 무얼 훔치는 것 같은 개인이 저지르는 죄를 의미하는 게 아니에요. 우리 사회 전체 시스템에 내재하고 있는 문명과 사회 자체에 죄가 있다는 겁니다.
부족한 인간이 마치 전능한 신처럼 지식과 지혜를 갖고 선악을 판단하려고 하는 그것이 바로 원죄예요. 원죄에서 벗어나는 사람은 없어요. 우리는 다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고, 지혜를 가졌다고 생각하며, 남을 심판하려 하니까요.
질문 9. 하나님은 왜 우리로 하여 죄를 짓게 내버려두었나요?
그걸 자유의지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다른 짐승들과 달리 인간만 자신과 가까운 모습으로 만들었어요. 흙을 빚어 그 안에 숨을 불어넣는 것. 흙은 육체요, 숨은 성령, 스피릿입니다. 오직 하나님이 흙에다 불어넣은 영, 그게 자유의지예요.
다른 짐승들에게는 주지 않았어도 인간에게는 준 것. 하나님은 인간이 선악과를 따 먹지 못하게 물리적 장치를 하지 않았어요. 그저 스스로의 의지로 따먹지 말아라, 하고 말했을 뿐이죠.
질문 10. 성경은 어떻게 만들어졌나요?
인터넷 위키피디아만 검색해도 알 수 있는 이야기를 오컴의 면도날을 빌려 그 얼굴을 가리고 있는 수염을 대담하게 깎아 그 민낯을 보십시다.
자,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인간의 언어, 그것도 인간이 만든 문자로 기록되었습니다. 우리는 ‘밥’이라고 하지만 어린아이에게는 ‘맘마’라고 해요. 이처럼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의 언어로 번역된 것입니다.
니고데모가 “예수님,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라는 것을 나는 믿습니다. 제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물으니 예수님이 “거듭나거라” 얘기해요. 그러자 니고데모가 “제가 나이가 몇인데 어떻게 어머니 속으로 다시 들어가 태어날 수가 있겠습니까”라고 말하지요. 그때 예수님은 “네가 사람의 말로 이야기해도 못 알아듣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말씀은 어떻게 알아듣겠느냐”(요 3:2~4, 12)고 답답해하십니다. “거듭나거라.” 이것은 비유로 얘기한 것입니다. 진짜 다시 자궁에 들어갔다가 나오라는 얘기가 아니에요.
성서에는 인간의 말 뒤로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이 숨어 있어요. 우리는 이를 통해 비유의 참뜻을 짐작할 수 있어요. 그걸 해석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목사님, 신학자들이고 종교의 연구가들입니다. 보통의 사람들은 니고데모처럼 알아듣지 못해요. 거듭나라고 하면 말 그대로 진짜 자궁에 들어갔다가 나오라는 것인 줄 압니다.
성경은 알다시피 아람어를 히브리어, 그리스어로 옮긴 거예요. 그리고 그것을 다시 라틴어로 옮기고, 또다시 각 나라말로 옮긴 것이지요. 성서 무오류설이란 그 진리에 오류가 없다는 것이지 번역된 자구 하나하나가 절대라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도 저마다 기술해놓은 것이 다 달라요. 똑같은 관용성서이지만 기술자가 누구냐에 따라서 다 달라집니다. 그리고 그 다름을 그대로 남겨두지요.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믿는 거예요. 한 사람에 의해 고쳐지거나, 인간의 논리에 앞뒤가 맞게 편찬되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게 돼요.
불완전한 인간이 하나님 말씀을 들으면 저마다 다르게 듣는 수밖에 없어요. 다만 그것을 정직하게 옮길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이 들은 대로 옮기는 것이지 내 마음대로 고치는 게 아니에요. 신약의 경우가 특히 그렇지요.
질문 11.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나요?
계속 증명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처음 했던 얘기를 기억하시지요. 믿지 않으면 성경 구절은 하나도 택할 게 없습니다. 저도 어렸을 때는 성경을 문자 그대로 읽었어요.
대홍수 때 노아의 방주에 모든 생물을 칸막이로 나누어 쌍쌍이 집어넣었다고 해요. 토끼 같은 초식동물이야 풀을 먹고 살겠지만, 그 안의 사자, 호랑이 같은 육식동물은 무얼 먹고 살까요? 토끼를 잡아먹지 않겠어요? 더군다나 물고기는 물난리를 피해 노아의 방주에 들어오면 도리어 죽어요.
또 창세기에 인간이라고는 아담, 이브, 카인, 아벨밖에 없는데 카인이 아벨을 죽이고 이마에 표식을 받으니 다른 사람이 보고 나를 해치면 어쩌냐고 물어요. 이제 사람도 자기까지 세 사람밖에 없는데. 이런 식으로 성경을 읽으면 하나도 믿을 말이 없습니다.
지구와 공은 크기나 기능이나 비교도 안 되지만 구조적으로 보면 똑같은 구체입니다. 그런 구조적 관점에서 창세기의 제1 창조는 첫째 날, 둘째 날, 셋째 날 시간을 분절(分節)한 거고요. 제2 창조 노아의 방주는 한 칸, 두 칸으로 공간을 분할(分割)한 것이죠.
나누어지지 않은 것은 ‘카오스(Chaos)’, 혼돈이죠. 즉, 카오스에서 시간과 공간으로 분절되어 있는 코스모스로 창조된 질서를 구조적으로 보여준 것이에요.
그러므로 성경을 자구대로 직역하거나 멋대로 의역할 수 없는 번역 불가능한 영역이 존재하지요. 그것이 바로 마귀가 돌덩이를 예수님께 보이면서 이것을 빵으로 만들어라 한 구절이에요. 널리 알려진 이 구절에서 우리는 빵을 떡이라고 번역했지만, 그것은 결과적으로 정반대의 의미를 갖게 된 거예요.
주기도문에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의 ‘양식’은 원문에는 분명 ‘일용할 빵’, ‘데일리 브레드(Daily Bread)’로 되어 있지요. 그러니까 일용할 양식을 환유(제유법)로 나타낸 것이지요. 근데 그걸 떡이라고 해봐요. 떡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빵은 늘 먹는 거지만, 떡은 어쩌다 먹는 거예요. 그래서 예기치 않은 횡재를 보면 우린 “이게 웬 떡이야!” 하잖아요. 원래 의미대로라면 오히려 ‘밥’이라고 해야 할 거예요.
서양의 빵과 우리의 떡은 거꾸로라고 봐야 해요. 형태는 비슷해도 빵과 떡은 전혀 의미가 반대예요. 빵은 불로 구운 거고, 떡은 물로 찐 거예요. 제조 방법부터 달라요. 시루떡이라고 하잖아요. 저쪽에서는 오븐에다 굽는 거고, 우리는 시루에다 찌는 거지요. 그런데 그렇다고 밥이라고 번역하면 될 일일까요?
안 되지요. 빵과 떡은 돌덩이와 외형이 비슷하니까 납득이 되잖아요. 빵과 떡은 그 자체로 하나의 고체지만, 밥은 개개의 밥알들이 모인 것이지요. 그래서 밥알들을 뭉쳐놓은 밥은 돌덩이와 전혀 비슷한 점이 없어요. 밥이라고 하려면 마귀가 돌덩이가 아니라 모래를 퍼주면서 “이것을 밥으로 만들어라” 하고 말해야 해요. 아예 성서에 나오는 마귀가 한 말을 바꾸지 않으면 성립이 안 돼요.
우리는 오랫동안 빵을 떡이라고 함으로써 이 구절을 정반대의 의미로 읽어온 거예요. 제가 여러 번 이 구절을 지적했듯이 형태를 따르자면 떡이라고 해야 하고, 의미를 택하자면 밥이라고 해야 하니 차라리 ‘빵떡’이라고 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반 농담으로 말한 적이 있어요.
실제로 목사님이 예수님께서 “사람은 떡만으로는 살지 못하느니라”라고 하자 시골 할머니가 그랬다잖아요. “별 싱거운 소리 다 듣겠네. 당연하지. 떡만 먹고 어떻게 살아 밥을 먹어야지.” 여기서 이 ‘떡’이라는 번역이 오역이라는 사실이 여실히 드러나는 것입니다.
질문 12. 종교란 무엇인가요? 왜 인간에게 필요한가요?
모든 것을 이룬 사람이 있다고 쳐봅시다. 성공해서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기업인, 세계 모든 것을 알게 된 과학자, 모든 것을 성취한 이들도 알지 못하는 것, 바로 죽음이에요.
세상 아무리 위대한 사람도 다 죽었어요. 그들 중에 죽음이 뭔지 알고 죽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죽음이 두렵지도 않고 관심도 없다면 종교는 없을 것이에요. 하지만 누구나 죽음을 두려워한다면 그 종교의 이름이 무엇이라도 마지막 질문은 죽음에 관한 것이 될 것입니다.
이병철 회장 또한 묻고 있지 않습니까. 한국에서 그보다 더 기업으로 성공을 거둘 수가 있을까요. 그런 그조차 질문하고 있어요. 바로 그 질문 속에 종교의 필요성이 있는 것입니다.
신을 부정하는 사람들도 그 필요성을 인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에서는 신의 존재를 부정했지만, ‘실천이성비판’에서는 그 필요성을 인정하였지요.
질문을 보면 답이 나온다고 했다. ‘종교란 무엇인가? 왜 인간에게 필요한가?’ 고(故)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은 논어를 정독하면서 맹자의 사상에 충실한 삶을 살아왔다. 하지만 공맹을 통해서는 사후 세계를 알 수가 없었다. 관상이나 역술로 죽음 이후에 대한 답을 구할 수 없다는 사실도 실감했다. 대한민국 최고의 경영인으로 평생을 달려왔지만, 문득 죽음을 코앞에 두고서야 깨닫게 된다. 그는 세상과 이별하기 한 달 전까지 ‘그래도 기독교가 아닐까’하는 절박한 마음으로 ‘하나님에 대한 24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있었다.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은 이 회장이 종교의 필요성을 이미 공감한 상태에서 다시 확인하기 위해 질문을 던진 것이라고 했다. 인간에게 종교는 필수적임을 재확인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철학자 칸트도 결국 그 필요성을 인정한 셈이라고 했다. 이 전 장관은 아주 어려운 문제도 간단하게 쉬운 말로 설명했다. 그는 우주와 통하는 특수한 공간을 어머니의 자궁 속이라고 표현했다. 세상과 통하지 않는 곳이라야만 생명이 자라난다고 말이다. 이것이 바로 어머니의 자궁과 우주의 ‘보이드(void)’가 통해져 있다는 결정적인 증거라고 했다. 아무것도 없는 거기가 바로 생명의 공간이요 창조의 공간이라는 말씀이다.
질문 13. 영혼이란 무엇입니까?
저는 이미 찻잔 하나로 이야기한 적이 있어요. 찻잔을 만드는 물질은 인간의 육체에 해당해요. 플라스틱 컵이면 플라스틱, 유리 컵이면 유리. 우리의 육체도 그 컵들의 질료처럼 우리의 몸뚱이를 이루는 물질인 거예요.
그런데 컵과 그릇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나요. 그들은 무언가를 담기 위해서 존재합니다. 컵의 본질은 무언가 담는 것이고, 무언가 담으려면 비어 있어야 합니다. 컵의 본질은 유리나 플라스틱 같은 물질에 있는 게 아니라 비어 있는 성질에 있어요. 비어 있지 않으면 컵에 무엇을 담겠습니까. 아무 역할도 못 해요. 비어 있는 게 그릇의 본질입니다. 그 빈 공간을 ‘보이드(void)’라고 해요.
그런데 제가 빈 컵에 커피를 따르면 커피잔, 물을 따르면 물잔이 되어 빈 공간이 없어져요. 그러면 이 컵은 더 이상 다른 것을 담을 수가 없지요. 이미 무언가 담겨 있으니 더 담을 수 없어요. 그게 ‘마인드(mind)’예요. 컵과 그릇 물질 자체는 ‘보디(body)’입니다. 만약 유리 컵이 깨지면 담고 있던 액체도 사라지고 아무것도 남지 않아요. 보디도 마인드도 없어집니다.
하지만 텅 비어 있던 공간, 그것은 어디로 갔을까요. 깨졌나요? 없어졌나요? 아닙니다. 그대로 남아 있어요. 그 비어 있는 공간은 저 은하계, 빅뱅이 일어난 저 우주와도 통하고 있지요.
상상해보세요, 우주도 비어 있으니까 우리가 달나라도 가고 하는 것 아니겠어요. 그릇은 보디, 그릇을 채우는 욕망이 마인드. 그릇이 깨지면 담겨 있던 게 다 쏟아지듯 죽으면 육체도 욕망도 다 없어집니다. 깨지고 쏟아져도 남아 있는 빈 공간, 모든 그릇의 비어 있는 부분, 보이드. 그게 스피릿이에요.
스피릿은 우주의 것이지요. 내가 죽어도 내 안에 있던 우주의 스피릿은 남아 있어요. 그래서 영성이 중요한 거예요. 몸뚱이도 내 것이고 마음도 내 것이지만 그 영혼만은 내 것이 아니에요.
– 물음: 실제로 이 세상에서 그 우주와 통하는 특수한 공간을 컵 말고 다른 곳에서도 찾아볼 수 있나요?
– 네, 있지요. 바로 어머니의 자궁 속이에요. 그곳은 세상과 단절되어 있어요. 세상과 통하는 곳에서 아기가 자라면 큰일이지요. 죽어요, 유산이에요. 그렇게 이 세상하고는 아무 관계도 없이 열 달 동안 자궁 속에서, 우주의 보이드 속에서 자라납니다. 그러다 알아서 태어나요. 아이는 어머니가 낳으려 한다고 나오는 게 아닙니다. “아이가 나오려 해요” 그러잖아요.
어머니의 자궁 안에서 알아서 자라고 생일날까지 다 받아서 나오는 것이지요. 이게 바로 어머니의 자궁과 우주의 보이드가 통해져 있다는 증거예요. 이것을 플라톤은 ‘코라(Chora)’라고 했어요. 아무것도 없는 거기가 바로 생명의 공간이요 창조의 공간입니다.
질문 14. 종교의 종류와 특징은 무엇입니까?
보세요. 물질적 현실은 다 똑같아요. 각설탕은 모양도 맛도 똑같아요. 그런데 그 각설탕을 아이들에게 줘보세요. 어떤 애는 그걸 먹어버리지만 어떤 애는 그걸 가지고 놀아요. 바벨탑처럼 쌓거나 집을 짓기도 하고 레고처럼 임기응변해서 여러 가지 형태를 만들어내요. 구축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아이들 저마다 달라요. 먹는 것은 같아도, 가지고 노는 것은 신기하게 다 달라요. 하나님도 신도 사각형의 흰 각설탕 안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 그것을 구축하는 아이의 영혼, 마음속에서 나타나는 거예요.
그러니까 종교적 영역은 지성의 영역이 아니라 영성의 영역입니다. 영성이 뭔지 모르겠으면 (인간욕망의) 가장 밑에 있는 ‘에로스(Eros·관능적 사랑)’의 사랑을 생각해봐요. 사랑하는 이를 위해 ‘정말 죽어도 좋아!’라고 목숨까지 걸잖아요. 보다 높은 단계에 가려면 가장 아래 단계에서 사다리 꼭대기까지 올라가게 되는데, 사다리에 걸려 있는 지붕 너머는 허공이야. 여기까진 발을 디딜 곳이 있는데 위에는 비어 있는 칸이죠. 그거(허공)를 밟고 올라가느냐 안 올라가느냐는 것은 믿음밖에 없는 거지요. 디뎠는데 없으면 떨어져 죽는 것이고……. 디뎌서 올라갈 수 있다면 그때부터 상승하는 것이죠.
종교도 마찬가지예요. 지하철 입구가 하나가 아닌 것처럼 종교도 여러 가지 종교가 있습니다. 불교면 불교, 기독교면 기독교라는 여러 입구가 있는 거지요.
어느 구멍이든 일단 들어가면 지하철처럼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하는 열차 두 대가 있을 겁니다. 우리는 그 서로 다른 노선을 천국과 지옥이라고 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마치 해리포터 9와 4분의 3 승강장처럼, 애초에 타려고 했던 노선과 전연 다른 미지의 통로가 나타나는 거예요. 이것이 바로 계시입니다.
법학 공부를 위해 떠났던 마틴 루터는 벌판을 지나다가 강력한 벼락을 만나 죽음의 공포를 느껴요. 광부의 아들인 그는 성모 마리아의 어머니, 성 안나에게 “성 안나여, 저에게 힘을 주소서. 그렇게 하신다면 저는 수도자가 되겠습니다.”
두려움 속에 무의식적으로 나온 기도와 약속, 바로 그것이 개신교에서 종교 개혁을 이룩하려고 했던 마틴 루터가 처음으로 위대한 하나님을 맞이하는 입구가 된 것입니다. 애초에 그는 종교 개혁을 하려던 꿈도 꿔본 적이 없고 오로지 법학 공부를 하려던 것인데 말이지요.
질문 15. 기독교를 믿지 않고는 천국에 갈 수 없나요?
기독교를 믿지 않으면 천국에 갈 수 없다고 성경 어디에 쓰여 있는지 나는 아직 모릅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성경에 나오는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기독교인이 아니라는 겁니다.
길거리에 나그네가 강도를 만나 피를 흘리고 있는데 제사장도 레위인 사제도 다 못 본 척하고 지나가요. 이교도인 착한 사마리아 사람만 나그네를 살려주고 갔어요. 그러면 기독교인이 천국에 가겠어요, 착한 사마리아 사람이 천국에 가겠어요.
이러면 제사장이 천국에 가는 게 아니라 아무 관련도 없는 이교도가 천국에 가는 거예요. 기독교인이 아니라도 기독교 정신을 가진 사람이면 천국에 가는 거예요.
그래서 기독교가 세계 종교가 된 겁니다. 기독교인만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했다면 세계 종교가 못 됐어요. 오늘날의 기독교가 안 됐습니다.
질문 16. 무종교인, 무신론자, 타종교인도 착한 사람이 많은데 이들은 죽어서 어디로 가나요?
예수님 자신이 산상수훈에서 말씀하셨어요.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하고 말씀하신 뒤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긍휼히 여기는 자, 마음이 청결한 자, 화평하게 하는 자,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마 5:3~10) 하셨습니다. 소위 말하는 칠 복이지요. 그 복을 천국으로 바꿔보세요. 다 천국으로 간다는 얘기입니다.
한국처럼 애통하는 사람이 많은 나라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 선인 중에도 생명을 존중하고 긍휼히 여기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한 인자한 선비들도 많았어요. 제 생각으로는 착한 사마리아 사람처럼 그분들도 모두 천국에 가 있을 것입니다.
질문 17. 종교의 목적은 모두 착하게 사는 것인데 왜 개신교만 제일이고 다른 종교는 이단시하나요?
기독교에서는 원수를 사랑하라 가르칩니다. 그런데 원수까지 사랑하는 그런 기독교인이 배타적이라고요? 구교든 신교든 오른쪽 뺨을 맞거든 왼쪽 뺨을 내주라고 하는 종교가 남을 배타해요? 만약 그런 짓을 한다면 그건 신·구 가릴 것 없이 기독교 정신에서 벗어난 사이비 종교입니다.
가톨릭이 종교재판을 하고 면죄부를 발행하고 하니까 하나님과 직접 소통을 해야겠다 싶어서 만든 게 개신교입니다. 전유물이 아니에요. 배타가 아닌 개혁이었지요. 그래서 마틴 루터가 종교 개혁을 한 거예요.
신·구의 삼십 년, 백 년 등 종교 전쟁은 기독교인들에게 많은 고통과 시련을 낳았고, 결국 볼테르의 관용론처럼 화해의 길로 일단락 수습이 되어갑니다. 정치적으로는 베스트팔렌조약의 주권국가가 그 와중에서 탄생한 것이지요. 그래서 오늘날 새롭게 지향하는 종교 간의 관용과 대화가 공존의 세계를 열게 되는 거예요.
하지만 아직도 종교분쟁지역에서는 해묵은 상처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세력이 잔존하고 있어요. 교황이 달라이 라마를 만나는 시대에 다시 옛날 신·구 갈등의 배타주의로 돌아갈 수는 없지 않습니까.
만약 오늘날 신·구 대립이 다시 불거진다면, “꺼진 불도 다시 보자”는 말처럼, 과거로 돌아가지 않도록 역사의 망령을 경계하자는 뜻으로만 새겼으면 합니다.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의 해석과 비유는 탁월했다. 이념에 눈 먼 공산주의는 혁명을 완성하는 날을 꿈꾸며 달려가고, 기독교는 대심판의 날을 목표로 한걸음씩 나아간다고 설명했다. 한국교회가 불신을 받고 있지만 그래도 한국은 전 세계에서 교회와 교인이 늘어나는 영적인 나라임에 틀림없다고 했다. 아무런 기독교 전통이 없는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하나님을 받아들인 나라라는 얘기다. 이 전 장관은 하나님은 교회 안에 앉아 계시는 게 아니라 광야에, 교회 밖에서 바쁘게 일한다고 했다. 이 곳에서 하나님은 길 잃은 이들에게 길을 알려주고, 우는 자의 눈물을 닦아주며 웃는 자들과 함께 박수치면서 살아 숨 쉬는 천국을 만들어 가고 계신다고 강조했다.
질문 18. 인간이 죽은 후에 영혼은 죽지 않고 천국이나 지옥으로 간다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나요?
영혼은 내 것이 아니에요. 죽고 난 후는 아무도 모르지요. 천국이니 지옥이니 하는 말은 모두 우리가 사는 현세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개념입니다. 저는 문학 하는 사람이니까 천국과 지옥에 관해서도 스토리텔링으로 얘기해보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죽고 보니까 사후가 기가 막힌 거예요. 으리으리한 집에 하인이 수천 명이 넘고요. 그런데 손 하나 까딱 안 하고 일주일이 지나니까 너무 심심한 거예요. 그래서 자동차 타고 드라이브나 갈까, 직접 요리나 만들어 먹을까 하는데 뭐만 하려고 하면 하인들이 안 된다는 거예요. 여기서는 뭐든지 원하는 대로 다 해주지만 당신이 직접 하는 것만은 안 된대요.
그래서 그 사람이 “이따위가 천국이면 차라리 지옥에 가서 살겠다”고 말해요. 그러니까 하인들이 하는 말이 “주인님, 여기가 천국인 줄 알았어요? 여기가 바로 지옥이에요.” 부딪치고 싸우고 피를 흘리면서도 참된 의미를 찾는 곳이 천국이지요. 흔히들 이야기하는 금은보화, 물질로 장식된 그런 곳이 천국이 아니에요.
서로 사랑하고, 자기가 먹을 거 자기가 벌고, 서로 나눠 먹고, 이런 참된 의미가 있는 곳이 지금 우리 곁에 있는 천국이지요. 세상에서 제일 재미없는 사람이 누굴까요. 모든 걸 성취한 사람이에요. 애들한테 제일 고통스러운 게 무얼까요. 엄마, 나 심심해. 심심한 곳이 바로 지옥이에요.
질문 19. 신앙이 없어도 부귀를 누리고 악인 중에도 부귀와 안락을 누리는 사람이 많은데 신의 교훈은 무엇인가요?
당연히 신앙이 없어도 부귀를 누립니다. 오히려 신앙이 없으면 더 잘 살기도 하죠. 욥은 하나님을 참 믿었지만 돌아오는 것은 큰 재앙이었습니다. 그는 부귀를 누리기 위해 하나님을 믿은 것이 아니에요.
현세에서 잘살고자 믿는 것은 기복 종교예요. 부귀와 영화는 탕자의 것, 지상의 것입니다. 복지국가는 정부에서 가난한 사람을 지원해주잖아요. 복지국가는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드는 복지국가는 수십 년의 고난을 겪고도 광야를 무사히 통과한 자만이 도달할 수 있는 가나안과도 같은 곳입니다. 모든 예언자는 부귀를 위해 신앙을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신의 교훈은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구하라, 그리하면 주실 것이다.”(마 7:7)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께 뭘 구합니까. 돈과 부귀와 영화를 달라고 하지요. 이 세상에서는 절대로 구할 수 없는 것, 생명과 사랑을 주옵소서 하면 반드시 주실 텐데 그걸 달라고 하는 사람이 없어요.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마 7:8) 하셨지만 애들이 달란다고 다 주는 어른들이 없듯이, 불의나 세속적 욕망에서 나오는 욕구는 들어주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마 22:21) 맡겨야 한다고 하셨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엉뚱하게도 하나님의 문 앞에서 카이사르의 문을 두드려온 것입니다. 하나님 얼굴 그린 지폐 한번 생각해보세요.
질문 20. 성경에서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을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에 비유하는데, 부자는 악인이라는 말인가요?
저는 이것이 성경에서 가장 잘못 알려진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거두절미하고 이 한 구절만 떼놓고 보니까 그런 오해가 생긴 것 같아요.
한 청년(부유한 자)이 예수님의 설교를 듣고 자신도 천국에 갈 수 있는지 묻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마 19:21) 하고 답하세요. 청년이 근심하며 떠나니 또 제자들에게 말합니다.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마 19:23~24)
버려야 천국에 갈 수 있는데 가진 게 너무 많은 사람은 그걸 쉬이 버리지 못해요. 하지만 예수님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게 “쉬우니라” 했지, 부자가 천국에 못 간다고는 말씀하시지 않았어요. 가진 게 너무 많으면 버리고 가기가 힘들 뿐 부자도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새도 뚱뚱하면 못 날아요. 그래서 고단백질을 먹는 것이지요. 키위, 닭 이런 새들은 날개가 있어도 지상의 것을 쪼아 먹기 때문에 하늘로 못 날아갑니다. 참 상징적이지 않습니까. 물오리와 덩치도 같고 날개도 같은데도 닭은 날지 못하는 거예요.
그렇다고 가난한 자들은 다 천국에 가느냐. 아닙니다. 자, 그 낙타 이야기 어떻게 끝나는지 다시 읽어봅시다. 제자들은 가난한 자가 아니라 부유한 자가 천국에 가는 줄로만 알았다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깜짝 놀라 그럼 누가 천국에 가느냐고 묻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가난한 자 부유한 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거치지 않은 자는 누구도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이지요.
질문 21. 미국은 사실상 국교가 기독교인데 왜 그리도 범죄와 사회 혼란이 많으며 세계의 모범국이 되지 못하나요?
맞습니다. 문제가 많은 나라이지요. 미국은 결코 타의 모범이 될 수 없는 나라지요. 그런데 이상한 것은 범죄도 없고 대낮에 살인도 안 하는 아주 조용한 비기독교의 전체주의 국가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 나라에서 살기 위해 비자를 얻겠다고 장사진을 치는 것은 미국 대사관이 되는 거지요.
왜 사건도 많고 모범도 못 되는 나라에 가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 걸까요? 열린 악은 닫힌 선보다 희망이 있어요. 내일이 있는 겁니다. 조용하고 사건도 없고 총성도 안 들려도 덮어진 악은 영원히 구제의 길이 없어요. 당장은 조용해도 통치자 한 사람만 죽어도 나라 전체가 망하는 것이에요.
미국은 아무리 시끄럽고 대통령을 비롯해 정상급 지도자들이 대여섯 명씩이나 암살을 당해도 끄떡없었습니다. 앞에서 말한 ‘자유의지’가 인간이 절대 버릴 수 없는 천성이기 때문이지요.
질문 22. 일부 신앙인은 때때로 광인처럼 되는데, 이것은 공산당원이 공산주의에 미치는 것과 어떻게 다른가요?
그런 것을 ‘파나티시즘(Fanaticism)’이라고 합니다. 신앙과 무관하게 어디에나 있을 수 있는 현상이지요. 그런데 유독 그러한 현상이 기독교와 공산주의에서 많이 발견되는 것은 종말론 같은 절대적인 이념을 바탕으로 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념에 눈이 멉니다.
질문 23. 흔히들 기독교와 공산주의는 상극이라고 합니다. 그럼 폴란드, 동구제국, 니카라과처럼 교회가 많은 국가는 어떻게 공산국이 되었을까요?
아주 중요한 질문입니다. 이 회장 때와 달리 오늘날은 남미 쪽에서 더 이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기독교와 공산주의는 얼핏 유신론과 유물론, 정반대되는 사상이면서도 그 바탕에는 의외로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 번째가 바로 사회에서 소외된 계층을 대상으로 하는 점입니다. 아시다시피 예수님은 창녀를 비롯한 사회 약자들, 병자들을 포용하지요. 공산주의 역시 소외된 인민, 대중을 그 혁명의 기반으로 봅니다. 이를테면 프롤레타리아트 해방이라고 할 때, 우리는 보통 무산계급이라고 하지만 그 원래의 뜻은 나라에 바칠 것이 아이밖에 없는 가난한 계층을 의미합니다. 이렇듯 사회 약자를 돌본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는 것입니다. 공산주의는 그런 소외 대상을 계급 혁명이라는 투쟁의 힘으로 보았고, 기독교는 구제의 대상으로 보았다는 점에서 둘을 구분 짓는 큰 차이가 발생하는 것뿐입니다.
두 번째로, 원래 소련의 공산주의와 러시아 말기의 정교(正敎)는 표면적으로 보기에는 갈등 관계에 있었지만 실제로 공산주의는 그 러시아의 전통적 정교회 사상을 차용한 게 많습니다. 특히 그중에서도 우주주의자와 유라시아주의자들의 사상과 정책이 그렇지요. 니콜라이 표도로프(1829~1903)가 특히 중요한 인물입니다. 도서관 사서였던 그는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 등 당대 모든 광범한 지식인들에게 영향을 끼친 박식한 인물이에요.
표도로프는 과학의 힘을 빌린 부활을 믿은 창조적 종말론자입니다. 자신이 유전공학으로 죽었던 아버지를 살려내고, 아버지가 또 자신의 아버지를 살려내면, 이 지구에 죽었던 사람들이 다 부활할 수 있다고 생각한 거예요. 그러면 지구가 부활한 사람들로 넘쳐나잖아요. 그럼 다 어디로 가야겠어요. 우주로 가야지요. 이런 표도로프의 사상이 영토 확장의 방향을 수평에서 수직으로 돌린 것입니다. 그래서 당시에 실제로 과학을 이용해 로켓을 만들려고 했어요. 그래서 러시아가 미국을 앞서 인공위성을 먼저 쏠 수 있었던 거예요. 러시아가 스푸트니크를 쏘아 올릴 수 있었던 것도 표도로프가 사서로 있던 바로 그 도서관에서 표도로프를 스승으로, 그 영향 밑에서 도서관을 매일 다녔던 콘스탄틴 치올콥스키(Konstantin Tsiolkovsky, 1857~1935) 때문이었지요. 독학을 하던 때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표도로프의 분부로 로켓 연구와 설계를 하게 됩니다.
황당하다고요? 아닙니다. 실제로 일론 머스크는 지금 우주선을 띄우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고 인간을 2030년까지 화성으로 이주시켜 지구 탈출 기획을 발표한 적도 있어요. 그 유명한 호킹도 죽기 전에 인공지능이 발달하면 그들이 지배하는 지구를 탈출하기 위해 거대한 로켓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았나요. 이게 백사십 년 전에 표도로프가 지구 탈출을 꿈꾼 것과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그러니까 기독교, 러시아 정교의 부활론이 공산 국가의 과학기술, 로켓기술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게 된 거예요. 이것이 현재 미국과 러시아에서 동시에 작동 중인 지구는 인간의 요람이지만 언제까지나 그 요람에서만 살 수 없다는 ‘우주 개발’ 정신인 것입니다.
세 번째로, ‘엔드 오브 히스토리(End of History)’, 종말론입니다. 대개 모든 나라의 역사관은 둥근 원처럼 순환하는 원리로 되어 있지요. 그런데 유독 기독교와 마르크스의 역사관은 선형적입니다. 시작점과 끝나는 점이 있는 거예요. 기독교에서는 대심판의 날이 그것이고, 마르크스에서는 혁명을 완수하는 그날이 그들의 역사의 끝, 엔드 오브 히스토리인 것입니다. 즉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역사는 혁명을 완수하는 날을 목표로, 또 대심판의 날을 목표로 향하는 단계요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질문 24. 우리나라는 두 집 건너 교회가 있고 신자도 많은데 왜 사회 범죄와 시련이 많은가요?
우리나라는 두 집 건너 교회가 있고 신자도 많지만, 사회 범죄가 많은 것도 사실이에요. 한밤중 비행기에서 서울을 내려다보면 십자가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말도 있는데도요. 한국 교회가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할 대목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두 집 건너 교회 없고 신자도 없고 사회 범죄도 없고 시련도 없는 나라에서 살고 싶은지 사람들에게 물어보세요. 다들 부정적일 것입니다.
지금 가난하고 고통스러워도 자유와 희망을 꿈꿀 수 있는 쪽을 택하려는 것이 인간입니다. 완벽하게 만들어진 체제, 이미 다 깔아놓은 선로를 달리기보다 허술한 자동차라도 자기 마음대로 달릴 수 있는 벌판을 원하는 마음과 같지요.
또 다른 시각에서 봅시다. “마스크 쓰고, 손 씻고, 거리두기 하는데 왜 코로나 안 없어지나요?” 하고들 물어요. 그런데 그렇다고 마스크 안 쓰고, 손 안 씻고, 거리두기 안 하면 어떻게 될까요? 교회가 많은 것과 범죄자가 많은 것은 인과관계가 없고, 만약 교회가 없었더라면 더 많은 범죄자의 사회가 되었을 것이라고 반박해도 반론하기 힘들 겁니다.
고(故) 이병철 회장은 누가 뭐라고 해도 한국의 제 1세대 기업가이다. 그는 ‘호암자전’에서 ‘도의가 떨어질 때 나라가 망했다’고 역사를 해석했다. 인간이 본연의 모습을 잃을 때, 남을 헤아리는 성실한 마음이 바닥났을 때 종말이 온다고 내다봤다. 평생 기독교를 믿지 않았던 이 회장은 1987년 시월의 어느 가을날, 절두산성당 고 박희봉 신부에게 손수 쓴 ‘지구의 종말은 오는가’ 등 하나님에 관한 24가지 질문’을 건넸다. 그러나 이 회장은 답변을 듣지 못한 채 한 달 뒤 별세했다. 가장 현명한 답은 질문 속에 있다.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은 ‘질문은 의문을 낳지만 믿음은 영성을 낳는다’고 했다. 그는 코로나 패러독스로 지치고 절망한 지구촌 그 많은 사람의 손에 ‘기적의 지팡이’를 선물하고 싶다고 했다.
-우리나라는 두 집 건너 교회가 있고 신자도 많은데 왜 사회 범죄와 시련이 많은가요?
우리나라는 두 집 건너 교회가 있고 신자도 많지만, 사회 범죄가 많은 것도 사실이에요. 한밤중 비행기에서 서울을 내려다보면 십자가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말도 있는데도요. 한국 교회가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할 대목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두 집 건너 교회 없고 신자도 없고 사회 범죄도 없고 시련도 없는 나라에서 살고 싶은지 사람들에게 물어보세요. 다들 부정적일 것입니다. 지금 가난하고 고통스러워도 자유와 희망을 꿈꿀 수 있는 쪽을 택하려는 것이 인간입니다. 완벽하게 만들어진 체제, 이미 다 깔아놓은 선로를 달리기보다 허술한 자동차라도 자기 마음대로 달릴 수 있는 벌판을 원하는 마음과 같지요. 또 다른 시각에서 봅시다. “마스크 쓰고, 손 씻고, 거리 두기 하는데 왜 코로나 안 없어지나요?” 하고들 물어요. 그런데 그렇다고 마스크 안 쓰고, 손 안 씻고, 거리 두기 안 하면 어떻게 될까요? 교회가 많은 것과 범죄자가 많은 것은 인과관계가 없고, 만약 교회가 없었더라면 더 많은 범죄자의 사회가 되었을 것이라고 반박해도 반론하기 힘들 겁니다.”
질문 25. 지구의 종말은 올까요?
“종말은 옵니다. 종교가 아니라 과학이 그걸 예견하고 있습니다. 그걸 열역학 제2 법칙, 엔트로피 수치 증대에 의한 것이라고 설명하지요. 형태 있는 건 무너지고, 질서 있는 건 무질서가 되고, 따뜻한 건 차가워지는 것이지요. 끓는 물도 끝에 가면 어떻게 되나요? 열은 식고 끓어오르던 물방울들의 비등하던 운동은 잠들어 조용해집니다.
한마디로 지구는 끓는 물이 식어가는 거대한 냄비라는 거예요. 그런데 여기 예외가 하나 있어요. 생명이요. 생명은 거꾸로 하나가 열이 되고, 열이 스물이 돼요. 둘이 결혼해서 애를 넷만 낳아봐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요. 역(逆) 엔트로피, 엔트로피의 역 현상입니다. 무질서하고 힘없는 아이가 거꾸로 질서와 힘을 만들어내는 거예요. 끓는 냄비가 식어가는 것과는 반대로 차가운 냄비가 뜨겁게 끓어올라요. 아이들은 다시 뜨겁게 끓어오르는 냄비입니다. 식은 게 뜨거워지고, 무질서한 게 질서로 가고, 그게 생명체의 신비지요.
구체적인 예를 들어볼게요. 예수에게 악마가 돌을 떡(빵)으로 만들라고 했어요. 그러면 다들 옳다, 좋다 할 거 아니에요. 길에 있는 떡을 먹는데 굶주린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그런데 천 년쯤 지나봐요. 돌이 새끼 쳐요? 돌 다 없어져요. 흙 파먹어요? 흙 다 없어져요. 예수님이 그렇게 기적을 만들어주셨는데 마지막엔 그 기적을 만들어주신 예수님 성전 돌기둥까지 파먹어요. 그런데 땀 흘려서 곡식을 심어보세요. 열 개를 먹어도 백 개가 되고, 백 개를 먹어도 천 개가 되고, 시간이 흘러도 안 없어져요. 그게 생식입니다. 그게 생명이에요. 여자는 아이를 낳고 남자는 노동을 해서 곡식을 가꾸는 것이 돌멩이를 빵으로 만드는 방법이에요. 영원히 사는 길이지요. 돌멩이를 빵으로 만들면 당장은 누구나 편하게 살 수 있겠지만 석유가 고갈되듯 언젠가는 그 돌멩이는 이 지구에서 사라지는 겁니다.
고비사막이 모래가 아무리 많아도 그것을 먹는다면 언젠가 다 없어져요. 그런데 생식하는 한 톨의 보리는 천년만년 가도 늘어나요. 그게 생명이에요. 그러니까 종교는, 특히 기독교는 죽음을 넘어서는, 엔트로피 증대를 역행하는 운동입니다. 그래서 저는 뉴턴이 한쪽만 바라본 사람이라고 말한 적 있습니다. 떨어지는 것만 봤지 그 작은 풀이 하늘을 향해 자라고, 나무가 되고, 거기에 빨간 사과가 열려서 높이 매달리는 것은 보지 못한 거예요.
우리는 떨어지는 사과가 아니라 뉴턴이 보지 못한 하늘로 올라간 사과, 그 생명의 역 엔트로피를 봐야 합니다. 그것을 사랑하고 믿어야 해요. 작은 송사리 떼가 잉어나 오른다는 상류를, 등용문을 통과하듯 향해가는 그 힘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아무리 큰 고기라도 죽은 고기는 흰 배를 내놓고 떠내려가지만, 송사리는 아무리 작아도 살아서 이렇게 상류를 거슬러 올라가요. 다시 말하지만, 그것이 바로 “나는 진리요, 생명이니라” 하는 생명의 힘입니다. 부활도 어렵게 생각할 것 없어요. 한 알의 곡식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거기서 수십 개의 열매가 열려요. 화려하고 아름다운 일종의 작은 부활이지요.
보세요. 우리 선조들 생명이 부활한 것처럼 바로 지금 이렇게 숨 쉬고 기지개 켜고 아침 산책을 준비하는 내 모습이잖아요. 육체만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이 모든 책도 선인들의 정신이 무수히 많은 책 제목으로 부활하여 나타난 것이에요. 책은 모두 죽은 자들의 사상의 부활인 것이나 다름없지요.”
-코로나 패러독스가 몰고 온 코로나 이후의 세계가 스물다섯 가지 질문을 통해 구체적으로 눈앞에 떠오르는 것 같습니다. 신학자나 과학자처럼 실증주의자들은 이런 말 못 합니다. 역시 선생님이기 때문에 이런 대답들을 들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모든 대답을 나는 학술적 실증론이 아니라 비유와 스토리텔링 그리고 유추와 상상력으로 꾸몄습니다. 신은 기하학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세모꼴이 아니라 원주율처럼 영원히 끝이 없는, 쪼개지지 않는 존재이기 때문이지요. 비길 바는 아니지만, 예수님이 비유를 많이 쓰는 까닭도 거기에 있어요. 예수님은 자신이 비유로밖에 말할 수 없는 그 답답함과 안타까움을 직접 토로하기도 해요.
“내가 그들에게 비유로 말하는 이유는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마 13:13) “내가 말할 때에는 비유로 말하겠고 천지 창조 때부터 감추인 것을 드러내리라(마 13:35)” “‘너희에게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알게 해주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고 비유로 말하는 것이다.”(눅 8:10) 말이 통하지 않을 때, 도저히 인간의 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다 전할 수 없을 때, 꼭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알아들어라” 하고 말해요. 그런데 특히 예수님은 마지막에 자신의 죽음을 알고 떠날 때 제자들에게 기막힌 말을 합니다.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기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느니라.”(요 16:21) 헤어지는 고통을 임산부가 어린아이를 낳는 고통에다가 비유한 거예요.
애를 낳으려면 고통을 느껴야 하잖아요. 너희들과 내가 다시 새롭게 만나기 위해서는, 즉 부활하기 위해서는, 산모가 어린애를 낳는 그 고통이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그러면 그 어린아이, 새로운 생명을 낳는 기쁨 또한 맞이하게 되리라는 거예요. 그런데 제자들이 이 뜻을 못 알아들어요. 부활의 의미를 모르는 거지요. 그때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이 “때가 이르면 다시는 비유로 너희에게 이르지 않고 아버지에 대한 것을 밝히 이르리라.”(요 16:25)기가 막힌 얘기예요. 비유로 말하지 않겠다. 때가 이르면 하나님의 뜻이 현실에 그대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비유가 필요 없어요. 저는 여기가 결정적인 대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도 이 회장의 물음에 대해 모두 비유 아니면 스토리텔링으로 이야기했지만, 저의 비유는 그냥 비유로 끝나고 말았지요. 예수님이 말씀한 비유로 말하지 않아도 되는 ‘실현’에 대해서는 나는 모릅니다. 침묵할 수밖에요. 그래서 한 나무꾼 이야기로 끝내려고 해요. 나무꾼이 산속을 헤매다 신선을 만났습니다. 신선은 자신의 존재를 들키면 발견한 사람에게 소원을 하나씩 들어주게 되어 있었지요.
신선은 나무꾼에게 소원을 말하라고 했어요. 나무꾼은 금을 달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신선이 지팡이로 돌을 치니 황금으로 변했습니다. 그걸 본 나무꾼은 뭐라고 했겠습니까. “나 금덩어리 말고, 그 지팡이 주시오.” “신선이 아니라 하나님 창조주의 지팡이, 금덩어리가 아니라 사막에 샘이 넘쳐흐르고 사막에 꽃이 피어 향내가 나고 사자들이 어린양과 뛰놀고 어린이들이 함께 뒹구는 참사랑과 그 기쁨을 만드는 하나님의 그 기적의 지팡이를 단 한 순간이라도 저에게 주십시오, 라고…. 아니, 코로나로 힘들어하는 모든 사람의 손에 쥐여주소서…. 이것이 글 쓰는 나무꾼, 산속을 헤매는 나무꾼의 꿈입니다.”
-오늘이 크리스마스입니다. ‘기적의 지팡이’를 받고 싶으신지요?
글을 쓰는 저와 같은 사람은 이 이야기에 나오는 나무꾼들과 저와 비슷한 데가 있습니다. 매일매일 산속에 들어가 나무를 하듯 글의 소재를 구하고 이야기의 자료를 모으고 그렇게 살아갑니다. 그러나 어느 날 저는 정말 그 이야기에 나오는 행운의 나무꾼처럼 이야깃거리가 떨어지고 생각이 막혀 끝없이 깊은 산중을 헤매다가 그 끝에 하나님을 영접하게 됩니다. 그 하나님은 지팡이로 돌을 때려 황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죽은 나무에서 새싹이 나오고 그것이 꽃봉우리가 되고 꽃봉우리는 꽃이 되어 아몬드의 열매를 맺은 아론의 지팡이 같은 기적을 일으키시지요. 이집트를 탈출하는 난민을 도와 힘을 주었습니다.
우연히도 제 메시지가 끝나는 오늘이 바로 크리스마스입니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빨간 망토의 산타클로스가 아니라 그 기적의 지팡이를 한순간만이라도 좋으니 저에게 빌려주십시오. 그러면 당신께서 말한 “사자와 양이 함께 놀고 독사와 아이가 한 구덕에서 지내”는 그런 세상을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지금 코로나의 대재앙으로부터 탈출하여 새로운 희망의 땅을 찾아가는 그 많은 난민의 손에 그 지팡이를 들려주옵소서.
1934년 1월 15일 충청남도 아산군 온양면 좌부리(現 아산시 좌부동)에서 태어났다. 슬하에 2남 1녀를 두었는데 딸 이민아(1959년~2012년)는 목사이자 변호사였으며 소설가 겸 정치인 김한길의 전 부인이었다. 그리고 재종숙부(7촌)가 역사학자 이병도이다.
부여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 철학과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단국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경기고등학교 교사로 부임했다가 단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전임강사, 이화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등을 역임하였다.
2. 생애
2.1. 어린 시절
그런데 아버지가 사업이 실패하든 말든 마음이 끌리기만 하면 무슨 아이템이건 간에 시작하고 보는 성격이셨기 때문에 어렸을 때는 실패한 상품들이 재고가 남으면 전부 자기에게로 와서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았다고 한다. 이어령은 이후 이런 지적 호기심이 왕성한 아버지를 둔 덕분에 창조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원동력을 얻을 수 있었다고 회고하기도 했다. 이와는 달리 어머니는 아주 감성적인 분이셔서 책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하셨고, 거기다가 형들도 모두 예술 하는 사람들이어서 자연스럽게 그쪽 분야에도 지식을 쌓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또래 아이들과는 잘 어울리지 못했다고 한다.
공주고등학교를 다니다가 부여고등학교로 전학하여 1회로 졸업하였다. 그 뒤 대학에 진학할 때쯤에 6.25 전쟁이 나는 바람에 집안 형편이 크게 어려워지자 형님 한 분이 “서울대 의대나 법대를 가면 등록금을 대주겠다”고 제안해 왔다. 사실 본인은 국어국문학과를 가고 싶었지만 당시에는 의예과도 문리과대학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결국 가족 몰래 국어국문학과에 원서를 내고는 그냥 문리과대학이라고 얼버무리고 말았고, 그 이후 실제로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 합격한다. 하지만 집안 사람들은 전부 의예과에 간 걸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완전히 잔치 분위기에 젖어 있었던 상태였는데, 나중에 사실대로 국어국문학과라고 말하자 집안 어른들은 “아니 언문 배우러 대학 가는 놈도 다 있냐!”며 낙담하셨다고 한다.
2.2. 데뷔와 논쟁
2.2.1. 1956년, 우상의 파괴
그러던 중 우연히 어느 출판기념회 자리에서 기성 문단에 대한 의견을 밝힐 기회가 생겼었는데, 그 자리에서 아주 혹독하게 비난을 퍼부었다. 그 일이 소문으로 퍼지면서 당시 한국일보 문화부장이던 작가 한운사의 귀에 닿게 되었고, 한운사는 겨우 대학교 2학년생이었던 이어령에게 그 발언의 요지에 관한 글을 신문에 발표할 것을 제안했다. 이어령이 이를 받아들여 써낸 글이 「우상의 파괴」였다. 이 글이 이어령의 정식 데뷔작이 된 셈이다.
1950년대 – 또다시 아이코노클라스트(iconoclast)의 깃발은 빛나야 한다.
무지몽매한 우상을 섬기기 위하여 그렇듯 고가(高價)한 우리 세대의 정신을 제물로 바치던 우울한 시대는 지났다. 그리하여 지금은 금 가고 낡고 퇴색해 버린 우상과 그 권위의 암벽을 향하여 마지막 거룩한 항거의 일시(一矢)를 쏘아야 할 때다.
우리는 조소한다. 고루와 편협을 자랑하는 아나크로니스트들의 가소로운 독백과 관중의 덧없는 박수 속에 ‘자기(自己)’와 ‘트릭’마저 상실해 버린 마술사의 비극을 조소한다. 눈도 코도 입도 없는 그 공허한 우상의 자태–그것은 우리 사색(思索)의 선혈을 흠씬 빨아먹고 교만한 웃음을 웃는 기생충의 모습이다.
그러나 구경(究竟) 낡은 유물은 그 낡은 구세대의 시간과 더불어 소진(消盡)되게 마련이며 혹은 박물관의 진열장 속에 정좌한 골동품으로서의 운명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이제 그러한 우상은 우리에게 있어 아무런 의미도 되지 않는다. 표피(表皮)를 스치고 지나가는 일진의 광풍에 불과하다.
우리의 정체를 감추기 위하여 그 거추장스런 달팽이의 껍데기를 등에 지고 다닐 필요는 없다. 혈혈단신 물려받은 유산도 없이 우리는 우리의 새로운 작업을 개시해야 한다. 50유년의 신문학 시대 그것을 과도기나 초창기의 혼란이라 부르기엔 너무나 지루하고 긴 세월이었다. 우리는 이 문학 선사 시대의 암흑기를 또다시 계승할 아무런 책임도 의욕도 느끼지 않는다.
지금은 모든 것이 새로이 출발해야 될 전환기인 것이다. 우상을 파괴하라! 우리들은 슬픈 아이코노클라스트, 그리하여 아무래도 새로운 감격이, 비약이 있어야겠다.
한국일보 일요판[A] 1956년 5월 6일 2면
그 이후로도 황순원, 염상섭, 서정주 등을 ‘현대의 신라인들’로 묶어 신랄한 비평을 가했다. 1959년에는 한 경향신문 지면을 통하여 김동리와 이른바 ‘비문 논쟁’을 벌였다.
2.2.2. 1967년, 분지 필화사건
하지만 1966년 남정현은 다시 반공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되었다. ‘반미 사상을 부추겨 북괴의 대남적화 전략의 상투적 활동에 동조한 작품’을 썼다는 것이 검사 측의 기소 요지였다. 이어령은 법정에 피고인 측 증인으로 출두했다.
변호인: 이 소설이 반미적인가?
이어령: 이 소설은 하나의 상징이므로 찬미도 반미도 아니다.
변호인: 저항 문학이란 무엇인가?
이어령: 문학은 본질적으로 저항이다. 아무리 평화 시대라도 작가는 저항성을 지닌다.
변호인: 북괴에 동조했다는 데 대해서는?
이어령: 작자는 달을 가리키는데 보라는 달은 안 보고 손가락만 보는 격이다. 장미가 뿌리를 갖고 있는 것은 꽃을 피우기 위해서지 사람에게 담배 파이프를 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남정현의 <분지>는 창작 과정의 꽃이다. 그가 만일 다른 의도로 썼다면 상징적, 우화적 수법이 아니라 준거가 확실한 리얼리즘 기법으로 썼을 것이다.
변호인: 나는 이 소설을 읽고 놀랐다. 증인은 이 소설이 용공적이라 보지 않는가?
이어령: 나는 놀라지 않았다. 병풍 속 호랑이를 진짜 호랑이로 아는 자는 놀라겠지만 그것을 그림으로 아는 자는 놀라지 않는다. <분지>는 소설이지 신문 기사가 아니다.
변호인: 증인은 반공 의식이 약한가?
이어령: 내 사상은 내가 써 온 글과 저작물들이 증인이 되어 줄 것이다.
2.2.3. 1968년, 불온 논쟁
이어령: ‘에비’란 말은 유아 언어에 속한다. 애들이 울 때 어른들은 ‘에비가 온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말을 사용하는 어른도, 그 말을 듣고 울음을 멈추는 애들도 ‘에비’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모른다. 67년도의 문화계를 한마디로 설명하는 단어가 바로 ‘에비’다. 문화의 침묵은 문화인 자신들의 소심증에 더 많은 책임이 있다. 존재하지도 않는 ‘에비’를 멋대로 상상하고 스스로 창조의 자유를 제한하고 있다.
김수영: 우리나라 문화인이 허약하고 비겁한 것은 사실이나 그들을 그렇게 만든 더 큰 원인은 정치권력의 탄압이다. 해방 직후와 4.19 이후를 회상하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이다. 서랍 속 불온한 작품이 아무 거리낌 없이 발표될 수 있는 사회가 현대 사회이며, 그런 영광된 사회가 머지않아 올 거라고 나는 믿고 있다.
이어령: 이승만 독재가 끝났을 때 참여 시인들의 저항은 시작되었다. 창조와 참여의 언어는 시체에 던지는 돌이 아니다. 문화를 정치 수단의 일부로 생각하는 오도된 사회참여론자들이 예술 본래의 창조적 생명에 조종을 울리고 있다.
불온한 작품이 서랍 속에 있는 한 아무 의미가 없다. 그것을 밖에 내놓을 때 비로소 그 문학은 참여하는 것이다. 봄이 오듯 영광된 사회는 절로 오는 것이 아니다. 참여의 본질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개혁하자는 것이다.
김수영: 모든 전위 문학은 불온하다. 문화의 본질은 꿈을 추구하고 불가능을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어령이 말하는 오도된 참여론자들은 교정될 수 있는 일시적 현상이지만, 한번 상실한 정치적 자유는 쉽게 회복될 수 없다. 우리의 질서는 조종을 울리기 전에 벌써 죽어 있다.
이어령: 김수영의 추종자이기도 한 60년대의 젊은 비평가들은 “문학은 진보 편에 서야 한다”는 하나의 이데올로기만을 모든 문학 작품에 강요하고 있다. 자기 이데올로기에 맞으면 삐라 같은 글도 명작이라 치켜세우고,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어떤 작품이라도 반동의 낙인을 찍고 있다.
김수영: 나는 문화의 본질로서의 불온성을 말했다. 정치적 불온성으로 좁혀 구분하지 말라. 불온성은 예술과 문화의 원동력이며, 인류의 문화사와 예술사는 불온의 수난을 담은 역사이다.
이어령: 김수영의 불온성이 좁은 의미로 해석되는 까닭은 “서랍 속 불온은 작품”이라 했기 때문이다. 문학적 불온이라면 무엇 때문에 서랍 속에 있겠는가. 문학의 가치는 동시적 불온성의 유무로 제한될 수 없다.
이어령은 이렇게 1950년대 평단의 젊은 기수로 등장해 주목을 받게 되면서 1960년에는 만 26세의 나이로 서울신문 논설위원에 발탁되었으며, 이후 한국일보, 경향신문, 중앙일보, 조선일보를 거쳤다. 1973년에는 잡지 ‘문학사상’과 출판사 문학사상사를 설립한다.
2.3. 창조의 달인
2.3.1. 1963년,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지프차가 사태진 언덕길을 꺾어 내리막길로 접어들었을 때, 나는 그러한 모든 것을 보았던 것이다.
사건이라고도 부를 수 없는 사소한 일, 또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지만 그것은 가장 강렬한 인상을 가지고 가슴속으로 파고들었다.
앞에서 걸어가고 있던 사람들은 늙은 부부였다. 경적 소리에 놀란 그들은 곧 몸을 피하려고는 했지만 너무나도 놀라 경황이 없었던 것 같다. 그들은 갑자기 서로 손을 부둥켜 쥐고 뒤뚱거리며 곧장 앞으로만 뛰어 달아나는 것이다.
고무신이 벗겨지자 그것을 다시 집으려고 뒷걸음친다. 하마터면 그때 차는 그들을 칠 뻔했던 것이다. 이것이 그때 일어났던 이야기의 전부다. 불과 수십 초 동안의 광경이었고 차는 다시 아무 일도 없이 그들을 뒤에 두고 달리고 있었다. 운전사는 그들의 거동에 처음엔 웃었고 다음에는 화를 냈다. 그러나 그것도 순간이었다. 이제는 아무 표정도 없이 차를 몰고만 있을 뿐이다. 그러나 나는 모든 것을 역력히 기억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잔영이 좀처럼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누렇게 들뜬 검버섯의 그 얼굴, 공포와 당혹스런 표정, 마치 가축처럼 둔한 몸짓으로 뒤뚱거리며 쫓겨갔던 그 뒷모습, 그리고.. 그리고 그 위급한 경황 속에서도 서로 놓지 않으려고 꼭 부여잡은 앙상한 두 손.. 북어 대가리가 꿰져 나온 남루한 봇짐을 틀어 잡은 또 하나의 손.. 고무신짝을 집으려던 그 또 하나의 손.. 떨리던 손..
나는 한국인을 보았다. 천 년을 그렇게 살아온 나의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뒷모습을 만난 것이다. 쫓기는 자의 뒷모습을..
그렇다. 그들은 분명 여유 있게 차를 비키는 아스팔트 위의 이방인 같은 사람들이 아니었다. 운전사가 어이없이 웃었던 것처럼 그들의 도망치는 모습은 꼭 길가에서 놀던 닭이나 오리떼들이 차가 달려왔을 때 날개를 퍼덕거리며 앞으로 달려가는 그 모습과 다를 게 없었다.
악운과 가난과 횡포와 그 많은 불의의 재난들이 소리 없이 엄습해 왔을 때에 그들은 언제나 가축과도 같은 몸짓으로 쫓겨가야만 했던 것일까! 그러한 표정으로, 그러한 손길로 몸을 피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가!
우리의 피부빛과 똑같은 그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우리의 비밀, 우리의 마음이 있다.
-경향신문, 1963년 8월 12일
이 에세이는 지금까지도 이어령의 놀라운 관찰력이 가장 돋보이는 글들 중 하나로 여겨진다. 언어적 특성을 이용한 분석, 통념적인 행위에서 새로운 의미 찾기를 통한 특유의 설명 방식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에세이이기 때문이다. 제목 역시 무슨 론, 무슨 고 하고 제목을 달던 시절에 ‘흙 속에 저 바람 속에’라고 붙여서 새롭다는 평가를 받았다. 단순히 ‘풍토(風土)’의 순서를 바꾸고 우리말로 바꿔서 지시 관형사 ‘저’만 덧붙인 것일 뿐이니 그리 대단한 창조가 아니었음에도 사람들이 안 하던 것이었기에 당시 사람들에게 새롭게 여겨진 것이었다고 이어령은 회고했다.
2.3.2. 1982년, 축소지향의 일본인
나는 지금 희끗희끗한 새치가 돋기 시작한 대학 교수로서 혹은 시력 0.2의 근시 안경을 낀 문예 평론가로서 일본을 논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우선 국민학교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 일본의 모습을 보고 생각하려고 한다. 서가에 꽂힌 책들, 그 중에서도 일본에 관한 그 많은 책들은 잠시 덮어 두기로 하자. 그 대신 작은 어깨에 멘 란도셀 속의 흰 공책과 몽당연필 한 토막을 준비해 두고 싶은 것이다. 더욱이 빠뜨릴 수 없는 것은 말랑말랑하고 잘 지워지는 지우개일는지도 모른다.
단순한 알레고리로 하는 소리가 아니다. 실제로 나의 일본어와 그 지식의 대부분은 식민지 통치를 받던 국민학교 교실에서 배운 것들이다. 그런데 문제는 왜 내가 굳이 그 어린 시절로 돌아가 일본에 대해 말하려고 하는가 하는 데 있다.
이 당돌하고도 무모한 모험을 하게 된 이유는 그 유명한 안데르센의 동화 「발가벗은 임금님」이 그런 용기를 주었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군중이 만들어 낸 환상의 옷을 통해서만 임금님을 바라본다. 남들이 모두 떠들어 대니까 임금님이 발가벗은 것을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오히려 잘못은 자기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하고 잠자코 있다. 그러므로 임금님의 알몸을 발견한 것은 아이들의 눈이었고, 동시에 큰 소리로 그것을 말한 것도 아이들의 입이었다.
지금까지 일본에 대해 씌어진 글들은 프랑스의 패션 북처럼 수많은 유행을 낳기도 했다. 그 중에는 일본인, 외국인 할것없이 저명한 학자, 예술가, 평론가를 비롯하여 관광 여비에 보태 쓰기 위해 씌어진 것 같은 여행자에 이르기까지 실로 그 필진만 해도 천차만별이다. 일본에 하루쯤 있는 외국인은 아키하바라에 가서 전자제품을 사고, 일주일쯤이면 후지산을 보러 가고, 한 달 넘어 머무르면 일본론을 쓴다고 할 정도니까 전쟁 전에는 그만두더라도 전후 일본에서 나온 일본론 저작이 천 권 이상이 넘는대도 이상할 게 없다.
‘국화와 칼’, ‘아마에의 구조’, ‘종적인 사회’ 등 그 책제목에서 유행어가 된 것도 있고, 거꾸로 ‘일본주식회사’, ‘이코노믹 애니멀’ 등 떠돌아다니던 유행어가 책의 주제로 둔갑하는 일도 적지 않다.
일본에서 일본론이 베스트 셀러가 된다는 것은 오미코시가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곧 사람들이 모여들어 그것을 둘러메고 ‘마쓰리’를 벌이기 때문이다. 그 유행어들은 신문의 표제로 쓰이기도 하고 잡지 권두 좌담회의 제목이 되기도 한다. 방송에서는 독창성이 빈약한 시사 해설자에 의해 감초처럼 쓰이는 말이 되고, 이따금 술자리에서는 안주 대신 오르기도 한다. 쓴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제법 엄숙한 강단 용어가 어느 틈에 대중가요의 한 구절처럼 거리의 골목길을 왕래한다. 그러므로 이런 형편에서 직접 자신의 눈으로 일본 문화의 알몸을 보고 만져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군중과 유행이 만들어 낸 환상의 옷’에 빠져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묻지 않은 눈으로 나는 차라리 국민학교 어린이가 되어, 일본 문화의 맨살을 보고 이야기해 보자는 작은 결심을 하게 된 것이다.
이후 김 사장의 주선으로 일본의 출판사인 학생사에서 책을 내자는 권고가 들어왔다. 계약을 맺고 난 뒤 약 8년간 틈만 나면 일본 관련 책들을 읽고 자료를 수집했었다고 한다. 그렇게 준비한 자료의 일부를 일본의 잡지 아세아공론에 발표한 것을 계기로 일본 국제문화교류기금의 초청을 받아 1년간 동경대에서 연구 생활을 하게 되었다.
이 기간 동안 책의 전체 분량으로 1천 매가 넘는 원고를 반 년만에 써냈다. 그것도 일본어로. 그야말로 두문불출하며 집필한 이 책이 출간되자마자 일본에서는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각종 언론과 강연의 초청을 받게 된다. 한국인이 쓴 책으로는 일본에서 최초로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이다.
이 책에서 이어령은 그동안의 일본론이 서양인과 비교한 일본인의 특징을 이야기한 것뿐이지 사실 그 중 대부분은 바로 이웃나라인 한국에도 존재한다고 지적하면서, 일본 문화가 가진 독창적인 특징이 바로 축소지향이라고 주장한다. 하이쿠, 분재, 트랜지스터, 쥘부채 등 일본인이 가진 축소지향적(혹은 미니멀리즘하고도 상통하는) 요소가 일본을 공업사회의 거인으로 끌어올렸으며, 반대로 침략의 야욕을 벌이는 등 확대지향을 하려는 시도는 처참한 실패로 끝이 났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도깨비가 되지 말고 난쟁이가 되라’고 역설한다.
축소지향적 성격이 일본 산업계에 반영된 대표적 사례로 워크맨, 토요타 코롤라, 피카츄 등이 주로 꼽힌다.
2.3.3. 1988년, 서울 올림픽의 개회식과 폐회식
또한 개막식에서 등장한 굴렁쇠 소년 역시 이어령의 기획이었다. 경기장을 가득 메우던 단원들이 모두 빠져나가고, 아주 평화로운 정적 속에서 하얀 옷을 입은 소년이(그것도 독일 바덴바덴에서 서울의 개최지 선정을 선언한 바로 그날 태어난 아이였다) 굴렁쇠를 굴리며 경기장 중앙을 사선으로 지나가는 모습은 전쟁고아의 이미지에 불과했던 한국의 인상을 새롭게 바꾸어놓겠다는 계획의 소산이었다. 거기다가 여백의 미를 살린 전통적인 문법도 있는 것이었다. 이어령은 이후 인터뷰에서 “왜 문학 하는 사람이 이런 일을 하느냐고 하기도 하는데, 원고지에 쓰던 것을 잠실 주경기장으로 옮긴 것일 뿐이다”라고 말하기도 했으며, 실제로 ‘이것을 시로 쓰면 1행시가 될 것이다.’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
흥미롭게도 1988년 서울 올림픽 16년 뒤에 열린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개회식에서 스타디움 바닥이 에게 해(海)를 상징하는 호수로 변하며 한 소년이 홀로 대형 종이배를 타고 물을 가로지르는 모습을 연출하여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었는데,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의 개회식과 폐회식의 총감독을 지낸 예술가 디미트리스 파파이오아누에 의하면, 아테네 올림픽의 개회식 연출을 위해 과거 여러 올림픽의 개회식을 참고하던 도중 1988년 서울 올림픽의 개회식 장면에서 어린 소년이 혼자 굴렁쇠를 굴리며 그라운드를 가로지르던 순간이 자신에게 특별한 감명을 주어 아테네 올림픽에서 어린 소년이 종이배 모양의 보트를 타고 물을 가르지르던 장면의 모티브가 되었다고 밝혔다.
참고로 굴렁쇠 소년의 주인공이던 윤태웅은 감사의 뜻으로 매년 크리스마스 카드를 이어령에게 보내고 있다고 한다.(기사)
2.3.4. 1990년, 초대 문화부 장관
두 번째 제의가 들어왔을 때 나는 일본에 있었죠. 그 당시 생각에 우리가 경제력이나 군사력으로 일본과 경쟁하는 건 힘들겠지만 문화적으로 경쟁하는 건 승부를 걸 수 있겠다고 생각했었죠.
그 무렵에 아들 결혼식 때문에 잠깐 한국에 들어왔는데, 또 제의가 온 거예요. 문화부가 처음 시작될 때라, 모든 걸 새로 시작할 수 있었죠. 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연구할 것도 있고, 관직이나 정치는 안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서 끝내 고사했어요.
그래서 장관 발표가 날 때에도 나는 아무 것도 모른 채로 KBS에서 강연 프로그램을 녹화하고 있었지요. 그런데 갑자기 연락을 받고 집에 돌아와 보니 카메라맨과 기자들이 인터뷰하려고 대기하고 있는 거예요.
아찔한 순간이었지요. 수십 년 대학에서 교수생활을 하던 때에도 학과장도 마다한 사람이 중앙정부의 신설 문화부의 수장을 맡게 되다니 앞이 보이지 않았지요.
(Q. 당시 인터뷰에서 “나는 아무것도 없는 빈 벌판에 집을 세우러 가는 목수이다. 목수가 자기가 지은 집에서 사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문화부의 네 기둥을 다 세워놓고 나는 떠난다. 그때 정말 이 집 주인이 올 것이다.”라고 하셨는데요.)
본심이었지요. 장관이 아니라 목수라고 불러다오. 목수는 집을 짓는 사람이지, 새 집에 들어와 사는 사람이 아니다. 장관 취임사가 곧 이임사였던 것입니다. 약속대로 네 기둥 다 세우고 자진해서 장관직을 떠났지요. 예술종합학교의 법안을 국무회의에 통과시킨 바로 그날이 문화부를 떠나는 날이었지요.
조정래의 <황홀한 글감옥>에서 밝히기를 1989년 10월에 소설 태백산맥을 탈고한 뒤 아리랑을 집필하기 위해 1990년 당시 중국으로 취재를 떠날 때 소설 태백산맥에 대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한 내사 문제로 안기부에서 막아 출국에 문제를 겪을 때 이어령이 먼저 조정래에게 전화를 걸어 만나자고 부른 뒤 “중국에 가려고 하느냐”고 물었고, “새 작품 써야 하니까요”라는 대답에 “그래, 가야지.“라고 짧게 대답하고는 인터폰으로 “조 선생님 빨리 수속해드려요.”라고 지시했고, 문화부장관이던 이어령의 장관 보증으로 중국으로 취재여행을 갈 수 있었다고 한다. 또 1992년 검찰이 태백산맥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 내사를 진행하면서 소관부서인 문화부에 의견서를 요청했을 때도, 이어령은 평론가 김상일에게 “태백산맥은 이적 표현의 위험이 있는 작품이 아니라 작가의 자유로운 상상력에 의해 씌어진 <신판 홍길동전>이다”라고 쓰라고 방향을 정해주었고, 이 의견서에 따라 당시 대검찰청에서는 내사를 마치고 “소설 태백산맥에는 분명 문제가 있지만 이미 350만 부 넘게 팔린 책을 법으로 문제 삼는 것은 과히 적절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삼지 않기로 한다.”고 발표하고 사건화를 유보했다. 이에 대해 이어령은 조정래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아 조정래 본인은 당시에는 그것을 몰랐고 10여 년 뒤에야 당시 의견서를 썼던 김상일에게 전해듣고 알았다고 한다.
그러나 공적도 있는 만큼 과오도 있었는데, 윤범모 예술의전당 초대 미술부장이 막 신설된 미술관에 ‘젊은 시각-내일의 제안전’이라는 제목으로 전시회를 열었으나, 그는 초도순시 때부터 “미술관에 민중미술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조해왔다. 이에 문화부와 예술의전당 임원들은 해당 전시회 폐쇄, 작품 철거시도, 도록 배포금지 조처 등을 내리자 윤 부장과 갈등을 빚었고, 결국 윤범모는 12월 부장직을 사퇴했다.
2.4. 2000년대 이후의 행보
2.4.1. 2006년, 디지로그
새해가 되면 떡국을 먹는다. 그리고 나이도 한 살 더 먹는다. 같은 동양 문화권인데도 중국 사람들은 나이를 첨(添)한다고 하고 일본 사람들은 도루(取)한다고 하는데 유독 우리만이 먹는다고 한다. 이 지구상에는 3000종 이상의 언어가 있다고 하지만 나이를 밥처럼 먹는다고 하는 민족은 아마 우리밖에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어떤 음식을 먹어서는 안 되는지를 묻는 환자에게 “나이만 먹지 말고 다 먹어라”고 했다는 어느 의사의 이야기는 한국인만이 웃을 수 있는 우스갯소리다.
시간을 상징하는 그리스 신화의 크로노스는 이 세상 모든 것을 먹어버린다. 하지만 한국인은 매년 설이 되면 자식까지 삼켜버린다는 그 무시무시한 크로노스를 먹어버리는 것이다. 그렇다. 음식이나 시간만이 아니다. 마음도 먹는다고 한다. 마음먹기에 따라 한국인은 무엇이든 먹을 수 있다. 돈도 떼어먹고 욕도 얻어먹고 때로는 챔피언도 먹는다. 전 세계가 한 점 잃었다(lost)고 하는 축구경기에서도 우리 붉은 악마는 한 골 먹었다고 한다. 모든 층위에서 먹는다는 말은 유효하다. 심리적으로는 겁을 먹고 애를 먹는다. 소통 행위에서는 “말이 먹힌다” “안 먹힌다”고 하고 경제 면에서는 경비를 먹거나 먹혔다고 한다. 심지어 성애의 차원에서는 따먹었다는 말까지 등장한다. (중략)
컴퓨터가 만들어 내는 가상현실(VR)의 삼차원 공간에서는 센서 글러브를 끼고 보조장치만 갖추면 실제 현실 그대로 보고 듣고 만지기도 한다. 이미 일본에서는 냄새까지 맡는 향기통신의 웹 사이트도 생겼다. 그러나 디지털 기술로 절대로 할 수 없는 것은 설날의 떡국 맛이다. 모든 감각을 모두 디지털화해 보낼 수 있지만 컴퓨터가 천 번 만 번 까무러쳐도 안 되는 것이 미각의 씹는 맛이다.
그러기에 애플 컴퓨터의 로고는 입으로 반쯤 저며 먹은 모양을 하고 있고 실리콘 밸리의 마돈나 킴 폴리제는 인터넷 쌍방향 프로그램을 개발하면서 그 이름을 커피 브랜드인 ‘자바’에서 따다 붙였다. PC방을 인터넷 카페라고 부르는 것처럼 모두가 먹을 수 없는 디지털 미디어에 미각 이미지를 보완하려는 고육지책의 산물이다. (중략)
디지털 혁명의 장밋빛이 조금씩 먹구름과 거품으로 변해가고 있다. 지금 양극화하는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틈새에 다리를 놓아주는 누군가의 힘이 절실하게 요구되고 있다. 새해가 되면 떡국과 함께 나이(시간)도 마음도 새로 먹는다는 한국인들이야말로 디지털의 공허한 가상현실을 갈비처럼 뜯어먹을 수 있는 어금니 문화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사이버의 디지털 공동체와 식문화의 아날로그 공동체를 이어주는 디지로그(디지털+아날로그) 파워가 2006년 희망의 키워드가 될 수는 없는 것일까. 디지로그의 뉴 파워가 무엇인지 성급하게 묻지 말고 이번만은 차분히 함께 검증해 보지 않겠는가. 줄기세포처럼 정말 그런 것이 있기나 한 것인지, 그런 원천기술을 보유하고나 있는 것인지 더 이상 기대가 실망이 되고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는 일이 없도록 그야말로 큰 마음 먹고 시작해야 한다.
-중앙일보, 2005년 12월 31일
2.4.2. 2007년, 지성에서 영성으로
요즈음 나는 70평생 동안 한 번도 하지 않던 일들을 하고 삽니다. 세례를 받은 것과 시집을 낸 것이 그렇습니다. 나이를 많이 먹은 사람들이 평소에 하지 않던 일을 하면 망령이 났다고들 합니다. 요즘엔 그것을 점잖게 알츠하이머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나를 만나기만 하면 꼭 그에 대해 질문을 합니다. “어쩌다가 예수를 믿게 되었느냐”는 것입니다. 질문은 한 가지이지만 묻는 사람들의 말투는 제각각 다릅니다.
예수님을 이웃집 강아지 이름 부르듯이 하는 안티 크리스천들은 경멸조로 묻고, 카뮈의 경우처럼 신 없는 순교자를 자처하는 예술가들은 배신자를 대하듯 질책하는 투로 말합니다. 다른 종교를 믿고 있는 사람들은 아쉬운 표정으로 금시 혀라도 찰 듯이 혹은 한숨을 쉴 것처럼 낮은 목소리로 질문을 합니다.
심지어 어떤 친구는 “예수쟁이 됐다면서-“라고 내뱉듯이 비웃습니다. 오랜 세월 글을 써왔지만 누구도 내 면전에다 대고 ‘글쟁이’라고 욕하는 사람은 없었지요. 그런데 말입니다. 세례를 받자마자 어느새 나를 ‘쟁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이따금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예수쟁이라고 욕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이 ‘욕쟁이’라는 것을 알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아요. 화내지도 않습니다.
세례를 받자마자 갑자기 성인이 돼서 그러는 게 아닙니다. 그들의 얼굴과 거동에서 나 자신이 그동안 걸어왔던 외롭고 황량한 벌판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남을 찌르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사막의 전갈 같은 슬픈 운명 말입니다. 그리고 또 성경에 이미 “너희가 내 이름으로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라는 말이 쓰여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가슴속에도 거북한 무엇이 암종처럼 자라고 있기 때문에 그러는가 봅니다. 겉으로는 강한 싸움꾼인 척하지만, 옆에서 누군가 한 마디 훈수를 하고 조금만 역성을 들어주면 금시 어린애처럼 울음을 터뜨리는 약한 무신론자들인 겁니다.
이어령이 이렇게 기독교인으로의 변신을 결심한 가장 큰 계기는 딸인 이민아 목사와 관련된 사건에서 비롯되지만, 2010년 출간된 책 「지성에서 영성으로」에서는 그 과정이 보다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교토에서 생활하는 동안 느꼈던 고독이 신에 대한 이해로 이어지고, 하와이에서 살던 이민아 목사의 실명 위기 사건이 일어나면서 기독교를 믿기로 결심을 굳히게 된다. 현재는 종교를 주제로 한 강연이나 인터뷰도 많이 하고 있는 편이다.
여기서 언급되는 실명 위기 사건을 대강 말하자면 이렇다. 당시 갑상선암이 재발해 있던 딸이 설상가상으로 실명하게 되자 이어령은 “내 딸에게서 빛을 거두지 않으신다면 내 남은 생은 당신을 위해 봉사하며 살겠다”는 기도를 올리게 되는데, 그 뒤 놀랍게도 7개월 만에 딸의 망막박리증세가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간증에서나 나올 법한 이런 사건에 관해 이민아 목사는 “아버지가 나더러 간곡히 부탁하셨다. 절대로 밖에 나가 기적에 대해 이야기하면 안 된다고. 모든 사람이 널 비웃고 우리를 박해할 거라고. 기적은 구제의 사인이지 신앙의 궁극적인 목표가 아니지 않으냐고 하셨다.”고 증언한다.
이후 당연한 일이겠지만 많은 이들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강신주의 경우 “이어령의 보수성은 기독교로 넘어간 데서도 알 수 있어요. 인문학자가 어떻게 종교를 가져요? 인문학자는 고통의 폭이 더 넓어야 다른 사람들을 포용할 수 있는데, 그만큼 고통스럽기 전에 교회에 가는 거예요. 그럼 안 돼요. 인문학자는 신을 믿는 순간 글을 쓰면 안 돼요. 왜냐하면 신에게 구원받고 위로받기 이전에 겪어야 될 고통들이 있거든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물론 강신주는 이 발언으로 많은 비판을 받았다. 수많은 종교인 인문학자들의 존재는 차치하더라도, 글 자체의 논리가 허술하기 때문.
신빙성이 약하긴 하지만, 오랜 기간 워커홀릭으로 살아온 이어령이 아버지의 애정을 적게 받고 자란 딸을 위한 (그것도 암 투병 중이므로, 어쩌면 딸이 살아 있는 동안 마지막 선물이 될 수도 있는) 선택으로 볼 여지도 있을 수 있겠다. 김정운은 그의 책 「남자의 물건」에서 “그의 딸은 아버지의 사랑을 느껴본 적이 없다. 아버지와 제대로 이야기 한번 해본 적이 없다. 이어령은 더 늦기 전에 ‘지상의 아버지’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 자신의 딸이 믿는 ‘하늘의 아버지’를 함께 믿는다고 했다.”고 쓰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이민아 목사는 2012년 사망했지만 아버지가 기독교로 전환한 뒤부터의 마지막 5년간의 부녀관계는 더없이 좋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2012년 이민아 목사의 별세 이후에도 양화진문화원에서 ‘인문학으로 찾는 신’과 같은 강의를 진행했다. 이는 그의 개종이 딸을 위한 선택이라기 보다는 딸의 투병과 회복을 통해서 지성만으로 완벽히 이해하고 해결할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것을 깨달음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의 저서 지성에서 영성으로에서 쓴 바와 같이 과학과 인간 사이의 빈 자리를 채워주는 종교의 영성이라는 표현도 이와 맥락을 같이한다
2.4.3. 2010년, 생명자본주의
아무래도 50여 년 전 그 겨울밤의 기억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야 될 것 같다. 전쟁과 피난살이의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은 무렵, 나는 단칸 셋방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그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고 이따금 아궁이의 연탄불이 꺼져 잉크병이 어는 일도 있었다.
그날은 더욱 그랬다. 아침에 눈을 떠보니 방안은 얼음장이었고 어항까지 얼어있었다. 어제만 해도 곧잘 헤엄치던 금붕어들이 살얼음 속에 화석처럼 박혀 꼼짝도 하지 않는다. (중략)
얼음의 돋보기 효과 때문이었는가. 유난히도 큰 금붕어의 눈과 마주쳤을 때 나는 어떻게 해서든 살려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도 같은 생각이었던지 주전자에 물을 끓여왔고 나는 급히 그러나 아주 조심스럽게 어항 속에 물을 쏟았다.
입김 같은 수증기가 올라오면서 어항이 숨 쉬는 소리를 냈다. 얼음이 녹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 살얼음 사이에서 금붕어의 지느러미가 조금 움직이는 것 같았다. 헛본 것이 아니었다. 혹시나 했던 것인데 정말 금붕어들은 꿈틀거리더니 헤엄을 치기 시작한 것이다. (중략)
우리가 잠든 사이 매서운 추위는 문고리도 흔들지 않고 내 신부의 방과 너희들의 어항을 침범했다. 얼어붙은 너희들을 보고 나서야 처음으로 우리가 한방에서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거다. 나의 추위가 바로 너희들의 추위였다는 것. 나에겐 지느러미도 아가미도 없지만 어항 속 겨울을 함께 숨 쉬고 있었다는 것.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그동안 모르고 지내온 거다.
너희들 이름처럼 빛과 환희, 꽃피는 축제의 생명을 위해 오늘 아침 우리는 함께 겨울과 싸웠다. 그리고 그 추위 속에서 살아났다. 한 주전자의 끓는 물이 온 방안의 냉기를 생기로 바꿨다. 미안하다. 절대로 다시는 연탄불을 꺼뜨리지 않겠다. 맹세하마. 그리고 아내의 차가운 손을 잡았다. 그건 내 아내와 앞으로 태어날 우리 아이들을 두고 하는 맹세였을 것이다.
그때 나는 갑자기 온 세상이 금붕어의 지느러미처럼 반짝이며 헤엄치기 시작하는 것을 보았다. 책장에 꽂힌 책들이, 언 잉크병이, 아내의 화장대와 방바닥에 벗어놓은 때묻은 양말, 일상의 얼룩과 먼지들까지도 일제히 수면으로 떠올라 금붕어처럼 숨을 쉰다. 비릿한 냄새를 풍기며 유리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죽음과 생이 이마받이를 하는 전율의 순간, 추위를 밀어내면서 잠시 아주 잠시 동안 나는 어항인지 모태인지 모를 따뜻하고 조용한 공간 속에 있었다. 그리고 조금은 슬프기까지 한 그 곳은 이미 10제곱미터의 단칸 셋방이 아니었다.
금붕어의 어항이 그것들이 태어난 강물과 바다로 이어지면서 지구 크기의 생명권으로 번져나간다.
2000년대 이후에도 이어령은 「젊음의 탄생」, 「유쾌한 창조」, 「우물을 파는 사람」, 「가위바위보 문명론」, 「보자기 인문학」 등을 지속적으로 내놓았다. 비록 몇몇 논란에 휩싸이고 있기도 하지만, 이처럼 이미 팔십객에 접어드는 지식인이 지속적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글을 쓰겠다는 열정만큼은 누구보다도 강한 듯하다.
2.4.4. 2021년
2.5. 2022년, 메멘토 모리
3. 비판
3.1. 이어령의 평론에 대한 비판
둘째로는 60년대 중반 이후 뚜렷해진 참여에서 순수로의 방향 전환의 불순함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들 수가 있다. 평론가 염무웅의 경우 “그들 자신의 진정한 감수성이나 절실한 이념에서 불가피하게 유도된 것이 아니라 남에게서 이름만 빌려온 것이 많았고, (중략) 현대 작가의 책임과 저항의 문학을 화려하게 외쳤고 거기에 간단히 동조했던 많은 사람들이, 전쟁의 참상을 겉으로나마 보지 않게 되고 직장을 구하여 생활의 안정을 얻게 됨과 때를 같이하여, ‘역시 문학은 언어의 예술’이라는 다른 하나의 구호를 마련하고, 옛 문학 노트와 일역판에서 보았던 ‘메타포’니 ‘분석 방법’이니 하고 유창하게 지껄이게 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전후에 줄기차게 외쳤던 증언이니 행동이니 휴머니즘이니 하는 말들이 겉으로만 그럴듯했지 사실은 구호에만 그친 것이었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노선 전환이 이루어진 게 아니냐는 것이다.
다만 평론가 유종호는 이러한 비판에 대해 이어령의 비평은 참여와 순수의 두 가지 시각이 함께 들어오면서 생겨나는 “절충적 성격”을 갖고 있다고 말했고 김현의 경우는 오히려 “50년대 문학인들의 방향 전환을 통해 한국 문학 이론의 급격한 발전이 뒤따랐다”는 관점을 제시하기도 했다.
한편 이어령은 1970년대 이후로는 문학평론을 거의 발표하지 않았고 사실상 에세이나 사회활동에 주력해왔는데, 그렇다고 문학 연구를 게을리했다고 볼 수는 없다. 이 시기에 이어령이 저술한 삼국유사나 하이쿠에 관한 연구는 그 성과에 비해 저평가되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존재한다. 드물게 현대문학을 다룬 글인 ‘다시 읽는 한국시’는 2015년 「언어로 세운 집」이라는 책으로 출간되기도 했다.
3.2. 천경자 미인도 위작 사건 방조 논란
‘고바우 영감’의 작가인 김성환의 증언에 따르면, 국립현대미술관이 작가에게 사과했던 초기 입장을 바꿔 진품이라 주장하고 나서고 당시로선 친목단체 정도였던 화랑협회를 동원 미인도를 진품이라고 판정하고 나서 논란이 거세지자 이어령 장관은 진품인 근거를 찾지 못하면 관련 직원 7명의 목을 치겠다고 압박해왔다는 것이다. 이는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밝혀내라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진짜인 것으로 만들라는 소리가 된다. 당시 ‘움직이는 미술관’ 프로젝트의 기획자가 이어령 당시 장관이었을 뿐만 아니라 이후에 보여줬던 잘못된 대처, 그리고 그로 인한 천경자의 심적 고통을 생각해보았을 때, 이 사건에 대한 배후 책임자로 이어령을 지목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며 또 이에 대해 명확히 언급하지 않는 것 역시 분명히 잘못됐다고 할 수 있다. 문자 그대로 문화권력인 셈.
자세한 사항은 SBS 스페셜 ‘소문과 거짓말-천경자 미인도 스캔들’ 편 참조.
3.3. 문단 내의 권력인가?
우선 이 주장이 틀렸다고 생각하는 측의 의견은 이러하다. 이어령이 20대 때부터 주목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기성 문단 전체를 비판하는 데에 나섰기 때문이다. 비판의 대상 역시 진보진영의 김수영에서부터 보수진영의 서정주까지 천차만별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문단에 데뷔한 직후의 이어령은 기성 문단을 장악하기는커녕 오히려 당대 문단 내의 파벌들로부터 위협을 당했다. 잡지 문학사상을 창간한 것 역시 순수문학 계열의 문학과지성과 참여문학 계열의 창작과비평 사이에서 접점을 찾기 위한 시도였고, 문학사상에서 주관했던 이상문학상 역시 ‘서울의 달빛 0장’, ‘저녁의 게임’, ‘엄마의 말뚝’, ‘흐르는 북’,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등을 수상작으로 선정하면서 당시 거대한 회사였던 ‘현대문학사’나 ‘사상계’, ‘조선일보’에서 주관한 현대문학상, 동인문학상과는 다르게 말하자면 소형 기획사에서 만든 문학상치고는 빠른 속도로 공신력을 인정받았다. (심사위원이 당시 문단의 원로들이었다는 점이 작용한 것이기도 하겠지만..) 위의 작품들은 요즘도 간혹 교과서에 이름을 올리기도 한다. (지금은 이어령이 문학사상사를 떠난 상태이다)
이어령은 1950~1960년대에 문단 내에서 보수주의가 만연할 때에는 ‘저항의 문학’을 제창했고, 1970~1980년대에 문단 내에서 참여문학이 활발하게 일어났을 때에는 오히려 진보진영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스탠스를 취했다. 그의 활동을 옹호하는 입장에서 본다면 이어령은 문단 내에서 비주류로서 활동한 인물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이런 인물이 현재의 문단 권력을 조직해 나갔다고 보는 것은 당시의 한국 문단 구조를 잘 알지 못하고 하는 주장이라는 것이다.
이 주장을 반박하는 이들의 의견은 이러하다. 기존 권력의 해체와, 그 공백의 선점은 가장 흔하게 발생하는 차기권력집단 형성의 과정이다. 없던 권력을 만들어내는 것은 거의 없거나 불가능하다. 대부분이 기존의 권력에 저항하는 스탠스를 취하면서, 기성권력의 해체와 동시에 그 자리를 차지하는 형태로 폐쇄적 권력집단을 형성한다. 그것은 전세계적으로 흔히 목격된 현상이며, 한국의 근현대사에서도 짧은 시간 내에 수차례 목격된 바 있다. 따라서 이어령이 한때 기성주의를 반대하는 스탠스를 취했다는 것이 지금의 이어령을 평가하는 절대척도가 될 수는 없다. 오히려 기존 기성권력의 해체에 앞장선 사람일수록 그가 다음시대 기성권력의 대표가 아닌가 하는 합리적인 역사적 추론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 주장 역시 반드시 옳다고는 볼 수가 없다. 이어령이 차기권력의 주축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빈약하기 때문이다. 이어령이 1970년대~1980년대에 크게 대두되었던 이른바 민중문학론이나 민족문학론의 대열에 가담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것이 그들의 대척점에 서 있는 보수적 문학평론 진영으로의 이동으로 이어졌다고 보는 것 역시 잘못된 사실이다. 이어령은 자신이 저항했던 기성권력이 힘을 잃은 직후 등장한 새로운 차기권력의 어느 축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이어령이 문화권력이 아니라는 주장을 반박하는 이들의 말대로 기성권력이 가라앉은 뒤 차기권력이 등장했고 그 공백을 메워 나갔지만, 정작 이 차기권력과 이어령은 아무런 관계도 없는 것이다. 문학평론가 이동하는 이 점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위에 인용된 (이동하는 불온 논쟁에서의 이어령의 글들을 인용했다.) 이어령의 발언을 주의 깊게 읽어보면, 왜 그가 1970년대에 접어들면서 우리 문학평론계의 한 고독한 아웃사이더로 머무르게 되었는가를 부분적으로 설명해 주는 단서가 그 속에 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중략) 그 첫째는, 그의 이러한 발언이 그 당시나 그 이후의 많은 우리나라 문학인들을 불쾌하게 만들 만한 것이었다는 점이다. (중략) 그 둘째는, 대단히 불행하게도, 그의 이러한 발언이 나온 이후의 우리나라 역사가 3선개헌과 유신을 거치면서 정치권력의 억압적 성격이 날로 더 강해지기만 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 갔다는 점이다. 그러한 역사의 전개 과정은 당연히 “문화인 자신에게 무슨 책임이 있단 말이냐”라고 대드는 김수영 식의 태도에 더욱 큰 무게를 실어주는 결과를 낳았다. (중략) 이어령이 위의 발언에서 김수영을 비판하는 가운데 구체적으로 피력한 주장의 내용으로 보건대, 1970년대 한국 문학평론계의 가장 큰 세력으로 떠오른 이른바 민중문학론 혹은 민족문학론에 대하여 그가 어떤 판단을 내렸을 것인가는 불문가지의 일이다.
지금까지 내가 해온 이야기는 그러나 위에서 이미 전제했던 바와 같이 문학평론가로서의 이어령이 1970년대 이래로 짙은 고독의 그늘을 거느려야 했던 이유의 단지 한 부분밖에 설명해 줄 수 없다. “1970년대 이래의 우리 문학평론계에서 민중문학론 혹은 민족문학론 계열의 세력이 가장 큰 흐름을 형성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결코 평론계를 독점하지는 못했으며 그것에 대하여 비판과 견제의 목소리를 발하는 사람들의 수도 적지 않았는데, 그리고 그런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는 이어령과 마찬가지로 러시아 형식주의, 바슐라르의 이론, 구조주의, 기호학, 원형이론 등등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갖고 연구하며 그런 것들을 자기들의 중요한 무기로 삼는 태도를 보였는데, 왜 이어령은 그러한 사람들이 적지 않게 존재하는 가운데서도 여전히 고독할 수밖에 없었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변까지가 제시되어야만 비로소 우리의 해답은 완성된 모습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방금 제기된 새로운 물음에 대해서는 실제로 어떤 답변이 가능할까. 나는 크게 두 가지 답변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민중문학론 혹은 민족문학론 계열의 세력에 대하여 비판과 견제의 목소리를 발하며 러시아 형식주의 기타 등등의 이론을 열심히 연구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문학을 사회와의 관련 속에서 파악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고 또 중요한 일이라는 원칙 자체에 대해서는 이의를 다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그런데 이어령은 그러한 원칙 자체에 대해서도 이의를 제기하는 태도를 취했다. 민중문학론 혹은 민족문학론 계열의 세력에 대하여 비판과 견제의 목소리를 발하며 러시아 형식주의 기타 등등의 이론을 열심히 연구한 사람들 중에서도 남달리 활발한 움직임을 보인 사람들은 배타적인 집단을 결성하여 평론계 내부에서의 헤게모니 쟁탈전에 나서는 데 대단한 재능과 집념을 과시한 사람들이다. 그들의 배타적인 집단을 결성하기 위해 동지를 모으는 마당에서 주로 의지했던 기준은 ‘세대’ 개념(대체로 보아 4.19 당시 대학 재학생-그 중에서도 특히 1학년생이면 더욱 좋다-정도에 해당하는 연령층일 것!)과 ‘전공분야’ 개념(주로 외국문학 전공자일 것!)이었다. 이 두 가지 기준을 중심으로 해서 동지를 모으고 배타적인 집단을 결성한 문학평론가들은 1970~1980년대 내내 민중문학론 혹은 민족문학론 진영의 문학평론가들에 버금가는 위세를 떨쳤으며 자기들의 제2세대에 해당하는 집단까지 다시금 조직적으로 키워내는 놀라운 정치적 지혜를 과시한 바 있다(제2세대에 이르러서는 국문과 출신까지도 적극적으로 포섭하는 변화를 보였다). 그런 그들에게 있어서 이어령은, 세대의 개념으로 보나 전공 분야의 개념으로 보나, 누구보다 먼저 배척되어야 할 존재였다. 한편 이어령 자신은 이런 점에 있어서 어떤 태도를 가진 사람이었나? 그는 배타적인 집단이건 배타적이지 않은 집단이건 도대체 집단을 만들어 움직인다는 것을 체질적으로 거부하는 사람이었다. ‘문학사상’이라는 잡지를 간행하는 자리에 있으면서도 집단을 만들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면 이 점을 잘 알 수 있다.
‘이어령은 문화권력이다’라고 보는 이들 중 일부는 이어령이 2번에서 볼 수 있는 축의 한 사람이 아니었는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하지만 이 글에서 볼 수 있다시피 이어령은 신인 시절인 1960년대가 지나가고 문단의 중진급이 된 후에도 문단에서의 세력을 구축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소설가 김채원의 회고에서 동료 작가인 송영이 “이어령의 크게 좋은 점은 어떤 파를 만들지 않는 것이다. 그만한 사람이면 능히 문단에 어떤 파를 형성할 수 있는데 그러지 않은 것은 그만큼 무엇을 바로 아는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했다는 증언은 결정적이다.
하지만 지금의 문학계가 점차 권력적으로 변화하고, 침체되는 것을 (반세기 이상 문단에 몸담아 왔음에도) 결국 막지는 못한 점, 그리고 그로 인해 탄생하게 된 현재의 한국문학의 권력구조가 비주류 문학도들의 문학계 진입을 방해하고 있다는 점 역시 당연히 지적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