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시스템은 ‘금융자본주의’라고 불린다. 좋다, 나쁘다, 어떻다 말은 많지만 지금이 금융의 논리와 흐름에 따라 세상이 바뀌고 굴러가는 금융자본주의 세상임은 분명하다. 그리고 사회와 우리 삶에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금융에 무지하다면 눈 뜨고 코 베이는 일을 겪기 십상이다. 이것이 저자가 ‘드래곤 플라이'(한국에서는 ‘공부의 신’이라는 이름으로 리메이크된 일본 드라마)의 대사를 인용하면서, 금융에 대한 교양적 지식을 알아야 한다고 일갈하는 이유다.
이 책을 읽기 전에: ‘금융의 시대’를 살아가기 위하여
1부 금융이 세계를 지배할 때
1장 외자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2장 달러는 어떻게 세계의 화폐가 되었나
3장 한국을 덮친 금융자본의 물결
4장 독일과 남미의 금융개방
5장 미국과 중국의 새로운 시대
2부 금융자본은 어떻게 내 호주머니를 강탈하는가
1장 주주자본주의는 애플을 어떻게 바꿨나
2장 기업의 ‘노동자 쇼핑’과 통상임금 문제
3장 조세천국으로 도망가는 기업들
4장 부동산 거품을 가라앉혀라
5장 키코 사태, 고객을 배신한 은행
6장 민영화, 금융자본의 마지막 개척지
3부 돈을 굴리는 세상, 돈이 굴리는 세상
1장 금융이 만든 오늘의 세계
2장 양적완화, 경기 회복을 위한 최후의 시도
3장 그 많은 돈은 어디로 가버렸을까
4장 앞으로 10년, 새로운 질서가 온다
5장 만약 미국이 부도가 난다면
6장 일본의 마지막 희망
7장 중국의 새로운 도전
이 책의 저자 이종태씨는 서문에서 금융의 강화에 대해, 대단히 비판적 입장을 취하고 있음을 밝히면서 독자들에게 이를 감안해 읽어주길 당부하고 있고, 실제 그 비판적 기조가 독자들에게는 호불호가 갈릴만한 단어 혹은 비유들로 꽤 많이 등장한다
한국이 외환위기를 통해 금융시장을 개방하게 된 것은, 부부가 이혼했는데 주변에 매력적인 이성들이 득시글거리는 상황
미국 제조업에 비해 동남아시아 노동자는 상당히 싼데, 기업들이 마음껏 노동자 쇼핑을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금융자본은 가난해진 대중을 다시 한 번 착취한다. 시민에게 대출폭탄을 안겨 이자수익을 내기 때문이다.
이는 상위 1%가 전세계 부의 반을 소유하는 금융자본주의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내 견지와 비슷하거니와 이성과 논리로 포장된 시니컬함이 내 취향과 잘 맞았다.
그 새끼들은 금융의 원리를 훤히 꿰뚫고 있으면서 큰 돈을 모을 줄 아는 재주를 가졌다.
금융이라는 단어로 멋지게 포장은 했으나 탐욕에 가까운 투기로 엄청난 부를 창출해낸다.
게다가 머리까지 비상해서 법까지 잘 피해간다.
그들은 세상 모두를 팔고 사는 금융자산으로 본다.
#a.
영화 <더 울프 오프 월 스트리트>에서 주인공 <조던 벨포드>는 회사주소도 모르는 싸구려 주식을 청소부, 웨이트리스, 배관공, 빈민 노동자들에게 세 치의 혀를 굴려 팔아 제낀다. 엄청난 수수료를 챙기고, 주가를 조작해 월스트리트 최고의 억만장자가 된다. 이 책 <금융은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가>의 마지막 책 장을 덮는 순간, 영화의 주인공 <조던 벨포드>가 생각났다.
수업 커리큘럼의 두 번째 책인 <금융은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가>에서는 금융과는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사회현상들이 어떤 금융 원리에 따라 움직이는지를 설명한다. 그리고 그 배후에는 <조던 벨포드> 같은 새끼들의 탐욕과 이해관계가 숨겨져 있음을 알게 된다.
줄곧 흑자를 내는 기업이 왜 그렇게 정리해고를 하지 못해 안달인가?
시민의 반대와 여론악화를 감수하면서까지 공기업 민영화, 공공서비스 영리화를 끊임없이 시도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통상임금이 뭐길래 노사는 끊임없이 대립각을 세우는가?
이 현상에 숨겨진 금융의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면 경제와 정치/사회현상 물론, 올바른 정치적 선택도 불가능하다. 이 책이 우리에게 전달하려는 핵심 메시지이자 유용성은 바로 이 부분이다.
#b.
1부와 2부의 내용은 책 제목과 잘 부합한다. (특히 2장이 그렇다)
금융이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켰는가 (특히 부정적으로)를 잘 설명하지만
마지막 장인 3부는 주제가 모호하고 앞 장과의 연관성이 다소 약해짐이 느껴진다.
마치 쉴새없이 골문을 몰아쳤던 전반전 이후
모든 것을 쏟아내 탈진한 선수들이 보여주는 지루한 수비축구를 보는 느낌이랄까.
#c.
그럼 본격으로 책의 내용을 살펴보자. 1부의 시작은 금융개방에 대한 이야기다.
IMF라 불리우는 외환위기가 한국만 덮친 것은 아니다. 비록 그 충격과 대처가 다르지만 선진국인 독일을 덮치기도 했고 남미도 덮쳤다. 그리고 동남아시아인 태국, 말레이시아도 덮쳤다. (나중에는 그리스도 국가부도 사태를 맞이한다)
거대한 금융자본은 더 많은 탐욕을 위해 세계 국가들의 경제빗장을 열어제치길 원했는데 외환위기에는 이 배경이 깔려 있었다. 그리고 그 탐욕의 선봉장에는 IMF가 있었고.
초국적 금융자본을 가진 그 새끼들은 특정 기업의 주식을 사고 파는, 구식 금융 테크닉으로는 자신들의 탐욕이 채워지질 않는다. 그깟 푼돈 거래로는 성에 차는 수익이 나질 않는단 말이다.
더 큰 돈을 벌기 위해서는 주식거래가 아니라 해당 기업의 경영권을 장악해서 노동자를 해고하고, 사업부문을 매각해 기업가치를 올린 뒤, 기업 자체를 되팔아야 천문학적 수익을 벌 수 있다. 그러니 그 새끼들에게는 기업이 얼마나 흑자를 내는지,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지는 전혀 알 바가 아니다.
신자유시대라는 금융은 지구촌을 장악했고 새로운 역사의 기록들을 만들어가는 중이다. 그 탐욕은 외환위기, 서브프라임 사태와 같은 글로벌 금융위기를 초래했지만 그 결과는 온전히 노동자들과 국민들이 치뤄야했다.
(영화 Big Short에서는 월스트리트의 탐욕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불행하게 되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융자본은 또 다시 자신들의 탐욕을 위해 (형태만 다른) 또 다른 금융기법을 만들어낸다.
책을 읽으면서 ‘저자 <이종태>씨는
이 책 제목을 더 도발적으로 붙이고 싶어하질 않았을까?’라는 호기심이 생겨났다.
#d.
2부는 책 제목 <금융은 어떻게 세상을 바꾸는가>라는 제목에 어울리는 에피소드들을 이야기 한다. 첫째, 주주자본주의는 혁신의 대표주자인 애플과 같은 ‘테크 자이언트’들에게 끊임없는 주주배당을 강요한다. 주주배당을 강요한다는 말은 회사가 만들어 낸 이익을 더 높은 혁신과 R&D로 투자하기 보다는 회사의 주인인 주주들에게 돌려주라는 걸 의미한다.
그 새끼들은 어떻게 해서든 기업가치를 올려서 팔아치울 궁리만 하고 있다. 인류애, 애국심, 사회헌신 그런 건 공염불에 가까운 소리다. (투자자들은 잡스가 살아 있을 때,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다가 잡스가 죽자 본격적으로 주주배당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두 번째는 평생을 급여자로 살아온 우리들의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통상임금에 대한 이야기다.
야근을 밥먹듯이 하는 한국의 샐러리맨/노동자들에게 시간외 수당을 주게 되거나 지금보다 더 늘어나게 된다면
회사는 손실이 커지고 주주에게 배당될 이익은 낮아지기 때문에 통상임금을 낮추려는 교활한 짓을 시작한다.
(사족 : 그들에게 노동자는 이윤착취를 위한 수단이자 생산재일 뿐이지 상생이 대상이 아니다. 우리는 그들의 이런 의도를 명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설프게 청교도의 직업윤리를 들먹이며 내 탓이오를 연발하거나 자신의 부족으로 책망하는 짓은 우리 스스로에게 이롭지 않다. 오히려 그 우둔함이 한심해 보인다. 무식이 자랑은 아니듯이)
노동자들의 착취로 쌓아온 이윤은 사회에서 순환되지 않고 조세천국이라고 불리는 다른 곳으로 옮겨진다.
복수의 해외 법인을 세우고, 카드 돌려막기 마냥 법인매출을 이리 틀고 저리 틀어 법인세를 안내려 한다. (그래서 이 새끼들이 질적으로 나쁜 새끼들이라는 거다.) 애플과 구글이 혁신의 아이콘으로 불리우는데, 탈세에서도 여지없이 이 재능이 발휘된다.
그 다음은 키코 사태다. 키코 사태는 책을 읽는 독자들의 어그로(분노)를 최대치로 끌어 올린다.
워낙 복잡하게 설계된 파생상품을 (의도를 숨긴체) 팔면서 그 책임에 대해서는 나몰랑이다. 심지어 법원도 무혐의로 처분해 그들의 손을 들어준다. 300만 달러 수출탑을 수상한 우수한 중소기업 <동화산기>가 파생상품에 의해 파산한 사례가 이를 잘 설명하고 있다.
만약 우리가 그 사장이었다면? 사장의 가족 중 한 명이었다면?
대체 우리가 뭘 잘못했길래, 한순간에 거리로 나 앉아야 하냐고 울부짖지 않았을까?
가슴에 엄청난 한을 품은 채로 말이다. 금융을 알아야 할 이유가 더욱 자명해지는 순간이다.
#e.
네 번째로는 인프라 투자 즉 민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자본주의 금융의 탐욕은 끈임없이 진화해 도로/교량/항만과 같은 공공 인프라까지 금융자산으로 삼았다.
이 민영화가 얼마나 고약한지는 주주투자주의 심리를 들여다보면 잘 보인다. 인프라의 특성상 투자금을 회수하기까지는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리게 되는데 주주자본주의는 이 시간을 기다릴 생각이 없다. (애초부터 없었다)
인프라에서 생긴 수익을 인프라 시설에 재투자 할 계획이 없는 것은 말할 나위 없고 자신들이 만든 금융투자사를 통해 부채를 만들고 수익의 우선을 부채 갚는 곳에 할당한다. 그리고 적자를 운운하며 법인세를 덜 내려는 교활한 지능을 발휘한다. 이는 돌려막기 조세회피 방법과 그 궤를 같이 한다. (MB 각하도 이 교활한 수법을 잘하기로 유명하다)
한국의 지하철 9호선의 적자가 바로 그 예다.
투자자들은 메트로9을 시민을 위한 공공 서비스가 아니라 부실할수록, 부채가 거듭될수록 주주들에게 더 많은 금융수익을 제공하는 금융투자대상으로 변모시켰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읽을수록 흥미로운 내용이 계속 전개되지만 3부는 다소 의아스럽다. 앞서 이야기 한대로 1부, 2부에 비해 김이 빠진 느낌이다.
#f.
3부의 첫 이야기로는 월스트리트 혁명이 등장한다. 2011년 월스트리트 혁명이라는 뉴스 보도를 접했을 때,
그 의도를 잘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 책을 읽고서야 그 배경이 이해됐다. 그러면서 무관심이 변명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이 스스로에게 들었다. 그 당시 나에게 올바른 경제관과 금융에 대한 사전지식이 있었다면 그들을 응원해 줄 수 있었을텐데. 세상을 올바르게 바꾸는데 조금이라도 힘을 보탤 수 있었을텐데라는 푸념말이다.
#g.
이 책을 읽고 나면 거대한 고발 프로그램을 본 듯 한 느낌이 든다.
중세시대에는 신이 세계를 지배했고, 근대시대는 과학이 지배했다. 내가 지금 살아가는 이 현대시대에는 금융, 자본이 지배하고 있다. 모든 것은 돈으로 움직이고 돈에 의해 움직인다.
자본주의의 원리가 작동하는 이 세계에서 내가 처하게 되는 현실은 무엇일까. 경기불황이라는 디플레이션 시대에서 어떻게 해야 중심을 잡을 수 있을까. 어떤 실질적인 행동 플랜을 짤 수 있을까. 이 수업에서 고기 낚는 법을 배울 수 있을까
“사회에는 룰rule이 있다. 그 속에서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그 룰이라는 건 모두 머리 좋은 놈들이 만드는 거야. 무슨 뜻인가 하면, 그 룰은 전부 머리 좋은 놈들이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들어놓은 것이라는 이야기다. (…) 당신들, 이대로라면 평생 속고만 산다. (…) 속지 않으려면, 손해 보고 살지 않으려면 당신들, 공부해!” -8쪽
저자는 국내외에서 벌어진 굵직한 사건들을 통해 금융이 사회에 얼마나 깊게 들어와 있는지 보여주고, 그것이 또 평범한 갑남을녀들의 생활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설명한다. 우리 지갑 속의 경제 사정은 사실 월스트리트에서 벌어지는 금융 사건들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미국의 저금리 정책으로 시작된 자산 거품은 한국의 하우스푸어 문제로 이어졌고, 투자은행들이 규제 완화를 틈타 만들어낸 금융상품은 한국에서 키코 사태를 일으켰다. 또한 금융자본의 마지막 개척지라 불리는 인프라펀드는 서울지하철 9호선 요금인상 사례에서 드러나듯 수익을 위해서라면 시민의 권리도 안중에 없다는 행태를 보였다. 그렇게 이 책은 현대 사회의 시민으로서 알아야 할 금융 지식을 경제의 최전선에서 전해주고 있다.
금융이슈 읽어주는 남자가 알려주는
지금 여기의 금융경제
현실 문제와 접목해 적절한 비유와 예시로 금융의 핵심을 전달하는 데는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금융이슈 읽어주는 남자’ 이종태 기자가 이 책에서 들려주는 금융 이야기는 추리소설을 보듯 흥미진진하다. 봐도봐도 어지럽기만 하던 금융이슈를, 핵심 골자만 뽑아 명쾌하게 설명하는 그의 솜씨를 몇 가지 소개해본다.
① 국채가 인기 있으면 왜 국채수익률은 떨어질까
물건이 인기가 있으면, 가격이 올라간다. 그 정도는 누구나 상식 수준에서 안다. 그런데 국채가 인기 있어서 국채를 많이 사면 국채수익률이 떨어진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이걸 너무 당연하다는 투로 이야기하는데,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국채 수요가 많으면, 주식 가격이 오르듯 국채 가격이 오를 테니까 수익률도 높아질 것 같은데 말이다. 대체 그 원리가 뭘까?
국채를 갖는다는 것은 만기일까지 원금과 미리 정해진 이자를 받을 권리를 보유한다는 의미다. 만약 당신이 어떤 회사의 주식을 사는 경우, 10만 원에 주식을 샀는데 팔 때는 5만 원일 수도 있고 20만 원일 수도 있다. 그러나 국채는 만기일에 받을 수 있는 돈의 규모가 처음부터 정해져 있다.
이처럼 ‘받을 돈’이 결정되어 있는 반면, ‘국채가 시중에서 거래되는 가격(국채 가격)’은 시장 상황에 따라 계속 변한다. 그래서 ‘국채수익률’도 계속 변한다. ‘국채수익률’이란 국채를 샀을 때 어느 정도의 수익을 올릴 수 있는지를 수치로 나타낸 것이다. 국채를 10만 원에 샀는데, 만기일에 정부에게 받기로 ‘정해져 있는’ 돈(이자와 원금)이 14만 원이라면, 국채수익률은 40%다(4만 원/10만 원×100). 그런데 국채에 대한 수요가 줄어 그 가격이 10만 원에서 8만 원으로 떨어졌다면, 국채수익률은 40%에서 75%로 올라간다(수익금이 6만 원이므로 6만 원/8만 원×100). 그러나 국채 가격이 10만 원에서 12만 원으로 상승하면, 국채수익률은 16.7%로 떨어진다.(2만 원/12만 원×100) 참고로 이상의 사례는 계산의 편의를 위해 일부러 수익률을 높게 잡은 것으로 실제 국채수익률은 이보다 훨씬 낮다.
즉, 국채 가격이 오르면 국채수익률은 떨어진다. 반대로 국채 가격이 내리면 국채수익률은 올라갈 것이다.
-235~236쪽
② 키코, 환율 좀 올랐다고 왜 기업들이 망할까
몇 년 전, 세간을 떠들썩하게 한 키코 사태를 기억할 것이다. 은행으로부터 키코라는 금융상품을 구매한 중소기업들이 2008년 세계금융위기 즈음에 큰 손해를 보고 줄도산한 이 사건은, 금융자본주의의 위험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많이 이야기되었다. 그런데 정확히 어떤 이유 때문에 그렇게 큰 피해를 보았을까? 환율이 예상 이상으로 올라 피해가 커졌다는데 그런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 바로 키코 계약에 환율이 어느 이상으로 오를 경우 계약한 회사가 은행에 달러를 약정 환율로 계약액의 두 배만큼 넘기는 내용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키코 계약은 한 달 뒤의 실제 환율이 낮을수록 기업이 이익을 보고 은행은 손해를 보는 구조다. 다만 여기엔 다른 복잡한 조건들이 붙어 있다. A사는 환율이 달러당 900~940원인 경우에만, 은행에 1달러에 940원으로 100만 달러를 팔 수 있다. 은행의 손실에는 한계가 설정되어 있는 것이다. (…)
그런데 키코 계약엔 은행이 A사로부터 ‘일정한 규모의 달러를 일정한 환율로 살 수 있는 권리(은행의 콜옵션)’도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환율이 ‘녹인Knock-In’ 지점인 960원을 넘어서는 순간 A사엔 무서운 일이 벌어진다. 이 구간에서 A사는 계약금액(100만 달러)의 2배인 200만 달러를 ‘약정 환율’인 1달러당 940원으로 은행에 팔아야 하기 때문이다. (…)
더욱이 키코 계약은 환율이 내릴 때와 달리 오를 때는 아무리 올라도 그대로 유지된다. (…) 환율이 1000원으로 오르는 경우, A사는 해외 업체로부터 받은 100만 달러를 10억 원이 아니라 (키코 계약 때문에) 9억4000만 원으로 은행에 팔아야 하므로 6000만 원 손해를 보는 셈이다. (…) 그런데 환율이 1500원까지 올라버리면 부담이 엄청나게 커진다. 15억 원으로 100만 달러를 매입한 다음 9억4000만 원으로 넘겨야 하기 때문에 5억6000만 원이 더 드는 것이다. -181~183쪽
③ 회사가 적자여도 주주는 돈을 쓸어 담는 이유
하루아침에 요금을 50% 올리려 해서 시민들의 큰 불만을 산 지하철 9호선. 요금 인상의 명분은 회사의 적자였다. 지하철 9호선을 운영하던 메트로9는 누적 적자가 1820억 원에 이르렀다. 적자의 원인은 주로 고리의 대출 이자 때문이었다. 상황이 이런 데도 메트로9의 주주들은 회사 운영에 만족해했다. 심지어 지급보증으로 이자율을 4%대로 낮춰주겠다는 서울시의 제안도 거절했다. 메트로9 측은 왜 이런 ‘손해 보는’ 일을 감수한 걸까? 답은 메트로9의 주요 주주가 메트로9에 거액을 높은 금리로 빌려준 채권자이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주주들은 회사가 적자로 손해를 봐도, 많은 이자를 챙길 수 있었다.
이들은 서울지하철 9호선이라는 ‘금융자산’에 모두 5712억 원을 투자(752억 원)와 부채(4960억 원) 형태로 투입했다. 이들은 총 5712억 원을 ‘자본금 3000억 원-부채 2712억 원’으로 투입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랬다면 자본금은 늘어나고 이자는 크게 줄어들어 메트로9의 재무 상황은 훨씬 건전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았는데 이엔 ‘합리적’인 이유가 있었다. 계속해 말했듯 금융 투자자 입장에서는 투자한 돈을 빨리 회수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서울지하철 9호선을 운영하면서 향후 비용이 줄어들고 고객이 많아져 당기순이익이 발생하고 이에 따라 배당금으로 투자금을 회수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이보다는 ‘지금 당장’ 이자를 받을 수 있는 부채로 돈을 투입해서 이자를 받는 편이 나았던 것이다. (…)
또 하나의 이유는 절세 때문이다. 만약 메트로9가 자본금을 확충해서 재무 상태가 건강해지고 이자 비용이 준다면, 순이익이 발생하고 금융권 주주들에게도 배당금을 줄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순이익이 발생하는 만큼 메트로9는 법인세를 내야 한다. 그만큼 주주들의 금융수익도 축소된다. 그러나 메트로9가 이자 형태로 금융기관 주주들에게 돈을 주는 경우는 어떨까? 일단 메트로9 처지에서 보면 이자는 비용이므로 세금을 낼 필요가 없다. -208~211쪽
④ ‘이례적인’ 경기부양 정책: 양적완화
양적완화는 통화량을 늘려 경기를 부양하는 정책이다. 그런데 통화를 늘려 경기를 부양하는 것은 ‘통상적’으로 정부가 해온 일이다. 정부가 공공사업을 해서 고용을 확대하는 재정(확대)정책과 금리를 낮춰 시중에 돈이 많이 돌게 하는 통화(팽창)정책이 그것이다. 익히 여러 번 봐온 특별할 것 없는 정책이다.
미국과 일본이 시행한 양적완화의 목적은 돈을 방출해 금리를 떨어뜨리는 것이었다. 그런데 당시 선진국들의 금리는 이미 0%에 가까웠다. 금리를 더 떨어뜨릴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엄청난 돈을 ‘살포’한 까닭은 무엇일까? 이들이 원한 것은 ‘실질금리’가 마이너스가 될 정도의 물가인상(인플레이션)이었다.
그렇다면 ‘명목금리’와 ‘실질금리’는 어떻게 차이가 날까? 예컨대 당신이 1000만 원을 연이율 20%로 은행에 예금했다고 치자. 그리고 이 시점에서 스마트폰 한 대 가격이 100만 원이라고 가정하자. 당신은 스마트폰 10대에 해당하는 돈을 저축한 것이다. 그리고 1년 뒤 당신은 원금과 이자를 합쳐 1200만 원을 받는다. 그런데 이 돈으로 스마트폰 12대를 살 수는 없다. 그동안 물가가 10% 올라 스마트폰 한 대 가격이 110만 원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 경우 당신이 살 수 있는 스마트폰은 11대(정확히는 10.9대)뿐이다. 스마트폰 10대의 값을 예금해서 받은 이자는 스마트폰 2대(20%)가 아니라 1대(10%) 값에 불과한 것이다. 즉, 물가인상을 고려하면 당신이 ‘실질적’으로 받은 이자는 20%가 아니라 10%다. 여기서 은행이 제시한 연이율 20%가 ‘명목금리’라면 10%는 ‘실질금리’다. 이처럼 실질금리는 명목금리에서 물가인상률을 뺀 수치라고 할 수 있다(실질금리=명목금리-물가인상률).
여기서 주의할 것은, 명목금리는 누구나 알 수 있지만(계약서 등에 표기되어 있으니까), 실질금리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좀 심하게 말하면 실질금리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다. 예를 들어 명목금리가 연 20%인데, A씨가 앞으로 1년 동안 물가가 10% 오를 것으로 예상한다면 A씨의 실질금리는 10%다(실질금리 10%=명목금리 20%-물가인상률 10%). 그런데 A씨의 친구인 B씨가 이후 1년간 물가인상률을 30%로 예상한다면, B씨의 실질금리는 마이너스 10%다(실질금리 -10%=명목금리 20%-물가인상률 30%). 이른바 ‘마이너스 실질금리’ 상태다. -230쪽
이게 선진국들이 막대한 액수를 들여 양적완화를 한 이유이다. 금리를 ‘마이너스 실질금리’로, 즉 저축할수록 손해가 되는 상황을 만들려고 한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이 결국 돈을 쓰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양적완화는 흔히 ‘경기부양의 최후 수단Last resort to stimulate the economy’으로 불린다.
⑤ 일본 정부가 미국보다 더 싸게 돈을 빌릴 수 있는 비결
잘 알려졌다시피 일본은 장기 디플레이션에 허우적대고 있다. 지금의 GDP가 1990년의 GDP와 거의 비슷할 정도다. 경기부양을 위해 일본 정부는 대규모의 공공 투자에 나섰다. 1990~2000년대에 걸쳐 토건사업에 매년 40조~50조 엔(400~500조 원)을 쏟아부은 것으로 추정된다. 어디서 이 돈을 마련했을까? 국채를 발행·매각해서 조달했다. 그러다 보니 일본의 국가부채는 2013년 말 GDP의 240%에 달했다. 빚이 많다고 떠들썩한 미국도 73%에 불과하다.(한국은 37% 정도다.) 게다가 일본의 국채는 미국보다도 금리가 낮다. 일본 정부는 어떻게 그렇게 많은 빚을 싸게 빌릴 수 있던 것일까? 바로 일본의 우정국 덕분이다.
일본 우정국은 한국의 우체국과 많이 다르다. 우정국은 일본 전국에 2만5000여 지국을 거느린 우편배달 시스템일 뿐 아니라 이 나라 최대의 저축·보험 기관이기도 하다. 우정국이 운용하는 자산이 무려 300조 엔에 달한다. 한국 원화로는 3000조 원(한국 GDP가 2013년 말 현재 1300조 원 정도다), 달러화로는 3조 달러에 해당하는 금액이다.(세계 최대 금융기관인 미국 BOA의 운용 자산이 1조5000억 달러 정도다.) 우정국은 단일 기관으로는 세계 최대 자금창구이며, 일본 민간 자금의 50~60%를 관리한다. 이런 우정국이 운용자금의 대부분을 일본 국채에 투자한다(일본 국채를 산다). (…)
이런 측면에서 고이즈미 전 총리가 주도했던 우정국 민영화는 ‘토건국가 일본’의 토대를 뒤흔들 만한 의제였던 셈이다. 우정국 민영화는 단지 ‘우체국 기능이 사기업에 넘어가 산골 주민들은 우편배달 등의 공적 서비스를 받지 못할까 우려된다’ 수준의 사건이 아니었다. (…) 미국이 일본 우정국의 개혁을 이토록 끈덕지게 원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우정국 민영화는, 우정국에 축적된 300조 엔이라는 거대한 자금의 운영권을 ‘일본 국가’에서 ‘세계 금융시장’으로 넘긴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세계 금융시장을 주도하는 것은 미국의 초대형 금융기관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