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판단
확진 편향과 기억
무의식의 명령에 복종하는 인간의 뇌
뇌가 거짓 기억을 만들어낸다.
행동 경제학
미국의 한 자선 단체에서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자문해 줄 변호사를 구하고 있었다. 그러나 가난한 비영리 단체라 사례는 시간당 30달러밖에 지급할 수 없었다. 당연한 결과지만 그런 조건에 선뜻 나서는 변호사는 한 명도 없었다. 이에 고민을 거듭한 단체장은 기발한 아이디어를 냈다. 돈이 아닌 명예를 치켜세워 주자는 것이었다. 이렇게 광고를 했다.
“이 일은 오직 명예직일 뿐 봉사에 대한 사례는 없습니다.”
그러자 지원자가 몰려들었다. 시간당 30달러 를 받으면 C급 변호사 취급을 받지만 비영리 단체의 명예직 변호사라고 하면 A급 변호사가 되는 것이다. 이를 경제학적으로는 해석이 안 되지만 심리학적으로 해석하면 당연히 그럴 수 있다. $30를 받아서 C급 변호사가 되느니 차라리 무보수로 일하면서 A급 변호사가 되는 게 낫다는 것이다. 아니면 자선단체 변호사임을 내세워 더 큰 사건을 맡을 기회도 생길지 모를 일이다. 또는 명성을 얻어 정계로 진출할 수도 있다.
이처럼 경제 행위도 비경제적인 요소들에 의해 영향을 받는 경우가 적지 않다. 즉 사람은 계산기만 두들기며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비합리적인 인간의 경제 행위
자본주의의 대전제는 인간의 이기심과 그에 따른 합리적인 행동이다. 자본주의 이론을 탄생시킨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모든 사람이 자신의 이익을 좇아서 합리적으로 행동하면 보이지 않는 선에 의해 시장 질서가 유지되고 결과적으로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라고 썼다. 상품의 효용 가치와 가격을 비교하여 효용 가치가 더 높을 때 거래가 이루어진다. 그러나 현실을 되돌아볼 때 과연 인간은 합리적인 존재인가 하는 의문을 지울 수 없다. 20세기 후반에 들어서면서 인간이 합리적인 소비 주체라는 애덤 스미스의 이론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비합리적인 소비 행동을 설명하기 가 점점 더 어렵게 된 것이다. 이성보다는 감성에 호소하는 상품들이 잘 팔리고 명품은 가격이 비쌀수록 잘 팔린다. 우리나라의 명품 열정은 이제 세계적인 명품 기업들이 노리는 큰 시장이 되었다.
20대 여성이면 명품 하나쯤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다. 한 아르바이트 포털사이트에서 대학생 131 명을 대상으로 명품에 관한 의견을 조사했다. 결과는 응답자 3명 중 1명 이상은 한 점 이상의 명품을 가지고 있었다. 나아가 아르바이트 생들의 30% 이상이 명품 구매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응답했다. 바야흐로 우리나라는 명품 공화국이다. 명동이나 강남 거리를 가면 3초, 5초 단위로 명품 가방이 지나간다. 사실 20~30년 전까지만 해도 인간의 경제 행동이나 선택은 당연히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것으로 생각했다. 경쟁 행동뿐 아니라 인간의 거의 모든 행동이 이기적이고 합리적으로 이루어진다 고 믿었다.
그러나 이제는 소비자를 합리적인 경제 주체로 가정해서는 풀릴 일이 아니다. 만약 인간이 오직 합리적인 판단 하에 행동하는 존재라고 한다면 배우자를 고를 때도 합리적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 진화론의 창시자 찰스 다윈은 결혼에 대해 나름 합리적으로 접근했던 것 같다. 결혼하는 게 좋으냐 독신으로 사는 게 좋으냐 하는 문제를 놓고 많은 고민을 했다. 그는 일기장에 이렇게 적고 있다. 물론 결혼을 하면 나쁜 점도 많다. 생활에 많은 제약을 받으며 의무적으로 돈을 벌어야 하고 전원생활도 즐길 수 없다. 그러나 장점도 많다. 나이 들어서 주름진 얼굴로 친구도 없이 비틀거리며 혼자 사는 것보다는 동반자인 아내가 옆에 있고, 음악이 있고, 여자의 잡담도 재미있지 않은가? 다윈은 항목마다 가중치를 부여하여 장단점을 비교하여 결혼하는 게 낫다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한다. 이러한 합리적 접근 덕분인지 그는 결혼하여 10명의 자녀를 둘 정도로 다복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그렇게 접근하지는 않는다. 인간을 이기적인 존재로 가정한 것 역시 부분적인 진리일 뿐이다.
신문이나 뉴스를 보면 삯바느질이나 행상을 해서 모은 전재산을 장학금이나 혹은 자신보다 못한 이웃을 위해 사달라며 쾌척하는 할머니들 이야기가 심심치 않게 실린다. 정작 자신은 먹고 싶은 거, 입고 싶은 것을 참으면서 모은 돈이다. 인간을 이기적 존재로 라는 가정하에서 보면 이들의 행동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이 할머니들은 그래도 젊음이 남아 있을 때 자신을 위해 좋은 옷도 입고 여행도 다니고 맛있는 음식도 드시고 했어야 했다. 이것이 진정한 이기주의다.
즉흥적이고 충동적인 인지적 오류
2002년 노벨 경제학상은 프린스턴 대학 대니얼 카너먼 교수에게 돌아갔다. 그는 경제학자가 아니라 심리학자였다.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의 공로는 기존 경제학의 이론적 기반인 인간의 합리성 가설을 뒤 업는 데 있다. 인간을 이기적이고도 합리적인 존재라고 가정한 경제학의 전제가 틀렸다는 주장이었다. 인간의 경제 행위는 그리 합리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카너먼 교수는 인간의 생각과 행동은 그리 합리적이지 않으며 다분히 편의적이고 즉흥적이며 충동적이라고 주장했다. 또 아무리 인간이 합리적이라 할지라도 불확실한 미래를 예측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이런 경우에는 합리적인 사고가 아니라 주관적으로 편향된 사고로 생각하고 판단한다 고 주장했다.
카너먼은 ‘생각에 관한 생각’에서 당시 미국 최고의 투자 금융회사 CEO의 사례를 들었다. 그 CEO는 모터쇼에 갔다가 포드 자동차에 대해 강한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포드 자동차를 좋아하여 포드 주식 수천만 달러를 사들였다. 단지 포드 자동차가 마음에 든다는 이유 하나였다. 카너먼 교수는 행동경제학에서 인간이 재화에서 추구하는 것은 재화의 효용가치가 아니라 심리적 가치라고 주장한다. 그렇지 않다면 비쌀수록 잘 팔리는 명품의 존재를 설명할 길이 없다. 고전적인 경제학자들이 인간은 효용 가치를 추구하는 합리적인 존재로 보았으나, 카너먼과 같은 행동 경제학자들은 인간이 온전한 이성으로 자신의 행위를 결정짓지 않는다 고 말한다. 오히려 인간은 감정에 치우친 결정을 하며 오류 투성이 일 수 있다. 불확실성 속에서 내려지는 인간의 판단과 의사 결정은 불확실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합리적인 의사결정이란 입수할 수 있는 모든 데이터를 분석 평가하여 내리는 결론이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 방식은 의사결정 과정에서 늘 무의식과 충돌한다. 1970년대 카너먼 교수는 동료 아모스 트버스키와 함께 불확실한 상황과 조건에서 이루어지는 판단과 의사결정에 관한 지배적인 경제 이론인 기대 효용 이론의 전제, 즉 인간의 합리적 판단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했다. 여기서 나온 결론은 인지적 오류가 합리적 의사결정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인간은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판단을 내릴 때 확률이나 효용 극대화 이론을 동원하여 복잡한 계산을 하는 것이 아니라, 경험 법칙에 비추어 어림짐작과 같은 지름길을 선택한다. 그리고 이런 지름길은 대개 인지적 오류를 범한다는 것이다.
끼리끼리 심리
유사성 효과
고슴도치 딜레마
너무 가까이도 너무 멀지도 않게
타인의 온기는 즐기되 간섭은 싫다.
엉터리 논리학과 패러다임 시프트
논리학의 백미로 꼽히는 연역법이나 귀납법 또한 오류의 가능성은 언제든 가지고 있다. 18세기의 영국 철학자 데이비드 흄은 귀납법의 오류 가능성을 처음 제기한 사람이다. 그는 이렇게 예를 들고 있다. 농부가 매일 아침 칠면조에게 먹이를 준다. 이것이 반복되면 칠면조는 사람을 절대 위험한 존재로 인식하지 않고 고마운 존재로 생각하게 된다. 그러면 그 믿음이 영원히 진리일까? 아니다. 11월 추수감사절에 식탁에 요리로 만들어 지기 전까지만 진리인 것이다. 연역적 논리 구조는 단 하나라도 예외가 발견되는 순간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모든 백조는 희다. A는 백조다. B도 백조다. C도 백조다. 따라서 a, b, c는 모두 흰 색깔이다. 그러나 17세기 호주에서 검은 백조가 발견되었다. 호주로 이주한 영국인들이 발견한 것이었다. 확률이 아주 낮기는 하지만 확률이 존재하는 한 언젠가는 나타나는 현상을 ‘블랙스완‘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2008년의 금융위기와 같은 경우다.
1910년 독일의 독일의 기상학자이자 지구물리학자인 알프레트 베게너는 찢어진 세계지도를 맞춰 보다가 깜짝 놀랐다. 남아메리카 대륙의 동쪽 해안선과 아프리카 대륙의 서쪽 해안선이 정확하게 하나로 맞물리는 것이었다. 아메리카 대륙과 아프리카 대륙은 아주 먼 옛날에 하나의 대륙이었다는 이야기다. 이에 의하면 지구의 각 대륙이 거대한 판 위에 얹혀 있으며 이들이 끊임없이 이동한다는 것이다. 그는 오래전부터 여러 대륙이 커다란 초대륙을 구성하고 있었으며 그 후에 갈라지면서 지금의 5대양 6 대륙이 형성되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베게너는 오랜 지질 시대를 통해 대륙이 천천히 이동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거의 모든 지질학자로부터 부정되고 외면되었다. 그의 이론은 수십 년간 사장되었다가 1960년대에 들어서 판구조론의 일부로 부활했다. 21 세기 들어 대기 순환을 연구하기 위해 세 차례나 그린란드를 방문했던 그는 1930년 마지막 탐사에서 사망했다.
과학사를 보면 늘 새로운 이론이 등장하여 기존의 이론을 뒤집는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 그러나 정설로 인정받기에 까지는 많은 세월이 걸린다. 과학 혁명의 구조를 쓴 토마스 쿤은 이런 형태의 발전을 ‘패러다임 시프트’라고 명명했다. 패러다임 시프트 paradigm shift, 사물과 세상을 보는 관점을 달리한다는 의미다. 날마다 동쪽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보고 태양의 지구의 둘레를 돈다고 생각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러나 진실은 지구가 자전하면서 태양의 둘레를 돈다는 것이었다. 지구가 돈다는 사실이 진리로 인정받기까지는 2000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그러나 이도 모를 일이다. 어느 날 은하계가 태양을 중심으로 회전하고 있다는 이론이 등장하여 정설로 굳어질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토마스 쿤은 모든 과학 이론은 잠정적이라고 말한다.
고대 그리스나 중세 사람들이 천동설을 의심 없이 믿었다면 틀린 것일까. 아니다. 당시엔 천동설이 옳았고 지금은 지동설이 옳다는 것일 뿐이다. 아리스토텔레스, 프톨레마이오스로 이어지는 천동설은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이, 뉴턴으로 이어지는 지동설에 밀려났지만, 다음에 나타날지도 모르는 새로운 이론에 의해 얼마든지 뒤집어질 수 있다. 그래서 모든 진리는 잠정적이라고 말한다. 뉴튼의 운동법칙은 아인슈타인에 의해 상대적인 것으로 축소되었고, 상대성 이론 또한 양자역학에 의해 수정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결국 상대성 이론은 빛이 다니는 우주공간에 적용되는 이론이고, 뉴튼의 이론은 지구 위에 물체 그리고 양자역학은 미시 세계에 적용되는 이론인 것이다.
진리는 아이들처럼 순수한 눈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들에서 나온다. 토마스 쿤은 말한다. 근본적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을 발견하는 사람은 아주 젊거나 아니면 그 분야에 아주 생소한 사람들이다. 한 분야에 오랫동안 몸담은 사람들은 이미 이전의 이론에 익숙해졌기에 오류를 깨닫기 어렵다는 의미다. 그러나 아마추어들은 고정관념이 없기에 기발한 상상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세상에 어리석지 않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정보와 지식의 부족, 욕심으로 어리석은 판단을 한다. 인간의 그릇된 판단은 잘못된 프레임, 아집, 편견, 욕심 때문에 일어난다. 기업가는 욕심에 눈이 어두워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판단하기에 기업을 망치고, 정치가들은 그릇된 신념 때문에 일을 그르친다.
결정 장애
‘결정 장애’라는 용어는 저널리스트 올리버 예게스가 쓴 ‘결정 장애 세대’에서 처음 사용했다. 1980년대 태어나 1990년대에 학창 시절을 보낸 젊은 층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그들에게는 확신이 없다. 그래서 그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도 maybe다. 우리말로 옮기자면 결정장애 정도가 될 것이다. 이 세대들은 어떤 물음에도 분명한 대답을 잘하지 못한다, 글쎄, 아마도, 그런 것 같아와 같은 모호한 말로 대답을 대신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 곳에 정착하지도 못하고 한 가지 일에 제대로 집중하지도 못한다.
기성세대는 이들에 대해 나약하다, 우유부단하다, 결단력이 부족하다고 비판하지만 예게스는 개개인의 나약함 때문이라기보다는 급격한 사회변화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사회가 초고속으로 디지털화되면서 선택의 범위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넓어졌기 때문에 무언가를 결정하는 일이 그만큼 더 어려워졌다. 선택의 옵션이 많으면 오히려 결정에 장애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이전 세대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뛰어나다. 인터넷 매체를 비롯한 각종 소셜 미디어를 통해 거대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검색할 수 있다. 세계적인 경영 컨설턴트 니콜라스 카는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은 무능해진다‘면서 그 이유로 너무 많은 정보를 쉽게 구할 수 있어, 그 정보를 내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 도외시되기 때문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소위 원리를 깨닫는 데 필요한 학습기간이 없다는 이야기다. 디지털 기술의 편리함 뒤에 불편한 진실이 숨어있다. 생각하지 않고, 말하지 않고, 움직이지 않아도 되는 디지털 시대, 그것이 아마도에 해당하는 메이비 세대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결정 장애 핵심 감정은 불안이다. 그리고 그 불안은 다가오지 않은 어떤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곧 결정에 대한 두려움은 결과에 대한 책임의 두려움이다.
햄릿 증후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사람의 스타일을 크게 둘로 나눈다면 햄릿형과 돈키호테형이 있다. 햄릿은 이럴까 저럴까 생각이 너무 많아서 행동이 일어나지 않고, 돈키호테는 생각도 하기 전에 행동부터 하는 스타일이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햄릿에서 햄릿은 이렇게 말한다.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햄릿의 아버지 엘시노아 국왕이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하자 삼촌인 클로디어스가 왕위에 오른다. 그리고 곧 어머니 거트루드는 새로운 왕과 재혼한다. 시동생과 결혼을 한 것이다. 햄릿은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지고 만다. 아버지의 죽음이 삼촌과 어머니가 공모한 범죄로 보이지만 물증이 없다. 그러던 어느 날 선왕인 아버지가 꿈에 나타나 자신을 죽인 클로디어스에게 복수를 해 달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진다. 기구한 운명의 햄릿은 내적인 갈등을 이렇게 독백으로 풀고 있다.
“기구한 운명의 화살을 맞고도 죽은 듯 참아야 하는가, 아니면 성난 파도처럼 밀려드는 제왕과 싸워야 하는가? 죽는 건 그저 잠자는 것일 뿐, 잠들면 마음의 고통과 육신에 따라붙는 무수한 고통은 사라지는가. 죽음이야 말로 우리가 간절히 바라는 결말이 아닌가. 그저 칼 한 자루면 모든 것을 깨끗이 끝낼 수 있는데…”
그 미지의 세계에 대한 불안 때문에 우리는 이 세상에 남아 현재 고통을 참고 견디는 것이다. 결국 분별심은 우리를 겁쟁이로 만든다. 이처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방황하는 현상을 심리학 용어로 햄릿 증후군, 혹은 결정 장애라고 부른다. 햄린 증후군의 원인으로는 개인적인 측면과 사회적인 측면이 있다. 부모에게 의존하는 수동적인 환경에서 성장한 사람일수록 결정을 내리기 어려워하는 성격이 될 수 있다. 대학 졸업 후에도 부모에게 의지하는 부분, 정치에 대한 냉소 등의 그것이다.
온라인 기술의 발달도 햄릿 증후군의 확산에 영향을 미쳤다. 인터넷으로 대상에 대한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게 되면서 오히려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 소비자가 늘었기 때문이다. 대량생산으로 인해 소비자의 선택 가능성이 넓어진 것도 소비자의 햄릿 증후군과 연관이 있다. 정해진 비용 내에서 기회비용을 줄이기 위해 고민하다 보면 선택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부모의 과도한 간섭이 오히려 결정 장애 세대를 만든다는 지적이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초등학생처럼 부모의 간섭을 받는 대학생이 많다. 대학 상담소에는 부모가 너무 간섭해서 힘들다는 대학생들의 고민이 쏟아진다. 대학생이 된 자녀 주위를 헬리콥터처럼 빙빙 돌면서 일거수일투족을 통제하는 헬리콥터 부모들이 자녀를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