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절사(子絶四): 무의(毋意), 무필(毋必), 무고(毋固), 무아(毋我).”
– 공자
공자께선 네 가지 일을 전혀 하지 않았는데 그 네 가지가 ‘무의, 무필, 무고, 무아’이다. 즉 자기 마음대로 결정하지 않고, 함부로 단언하지 않았으며, 자기 고집만 부리지 않았고, 따라서 아집을 부리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이 모두를 하나의 속성으로 묶을 수 있는데 그게 바로 ‘겸손’이다.
1. 함부로 억측하지 마라
상식과 편견은 종이 한 장 차이다. 모든 일을 조사하며 진행할 순 없지만, 그렇다고 본인 직감에만 의존하는 건 위험하다. 균형 감각을 발휘해야 한다. 어떤 것을 예단하기 전에 그것이 진실과 다름이 없는지 살피고 지나치게 편견에 의존한 판단은 아닌지 늘 경계해야 한다. 애매한 건 귀찮더라도 여러 번 조사하고 신중히 판단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누구에게나 사정이 있다. 단정하지 말라.
2. 자신만 옳다고 믿지 마라
옳고 그름에 너무 집착하지 마라. 세상에 100% 한쪽만 진리인 건 없다. 설령 맞더라도 조건부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기 믿음도 중요하지만, 그걸 만고불변의 진리처럼 믿고 내세우면 주위에 적이 많아진다. 특별히 대단한 사안이 아니라면 주변 사람과 의견 충돌은 ‘다름’으로 풀어나가야지 ‘옳고 그름’으로 풀어선 안 된다. 유연한 태도로 대처하는 게 좋다.
3. 끝까지 고집부리지 마라
자기 주관을 관철해야 하는 순간이 분명 있다. 특히 리더의 위치라면 더 그렇다. 그런 순간에 책임감을 바탕으로 밀어붙이는 추진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대부분 그렇게까지 굴어야 할 일은 별로 없다. 사소한 거 하나하나 자기 뜻대로 해야 하는 사람은 정작 중요한 일을 놓치기 쉽다. 웬만한 건 적당히 넘어가고 중요한 것만 취할 줄 아는 요령이 중요하다.
4. 자신을 내세우지 마라
모난 돌이 정 맞는다. 우리 사회는 전면에 나서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관대하지 않다. 그 사람이 잘나서 나선 거면 잘난 척한다고 욕하고 그냥 나서면 나댄다고 비하한다. 적극적인 사람을 자신감보단 자만감으로 느끼는 사람이 많으니 나설 땐 늘 조심해야 한다. 가식적이란 평가를 들어도 좋으니 항상 겸손한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그게 진심이든 아니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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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는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에서 무아(無我)의 경지로 나아간 석가모니, 자기(自己)를 부인(否認)하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한 예수와 함께 인류의 성인으로 추앙받고 있다.
무의무필무고무아는 무아(毋我)의 경지가 어떤 것인지 자기부인(自己否認)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쉽게 설명한 문장이라고 할 수 있다.
무의(毋意)는 자기 생각으로 사물을 판단하거나 추측하지 않는 것, 무필(毋必)은 확실하지 않은 것을 틀림없다고 우기지 않는 것, 무고(毋固)는 자기 생각만 옳다고 고집하지 않는 것, 무아(毋我)는 자기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것이다.
공자는 소인(小人)에서 군자(君子)로 나아간 사람이다. 소인은 어떤 사람인가? 자기 의견이 강하고, 반드시 이러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매우 고집스럽고, 자신이 아니면 안 된다는 태도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무의무필무고무아를 다른 말로 극기복례(克己復禮)라고 할 수 있다. 제자 안연이 공자에게 인(仁)이 무엇인지 묻자 공자는 극기복례가 인을 하는 것이라고 답한다. 극기복례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자기를 이기고 예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공자가 말하는 예(禮)는 천명(天命), 즉 하늘의 명령에 따라 사는 것을 말한다. 석가모니의 표현을 빌리면 천상천하유아독존에서 벗어나는 것이 극기(克己)이고 무아(無我)의 경지에 들어가는 것이 복례(復禮)이다. 예수의 표현을 빌리면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 극기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이 복례이다.
논어 이인(里仁)편 제10장에 나오는 “무적야 무막야 의지여비(無適也 無莫也 義之與比)”라는 문장도 무의무필무고무아와 같은 표현이다.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는 것도 없고 절대로 안 된다는 것도 없으니 오직 의를 따를 뿐”이라는 말이다. 소인은 반드시 그래야 한다고 우기고 또 절대로 그래서는 안 된다고 우긴다. 한 가지 유의할 것은, 무의무필무고무아가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말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자기 생각을 고집하지 않는다는 것이지 진리가 없다는 것이 아니다.
공자의 기준은 천명(天命)이다. 무의무필무고무아는 자기 생각이 아니라 천명, 즉 하늘의 명령을 기준으로 분별한다는 의미이다. 인류의 성인으로 추앙받는 스승들은 한결같이 절대적인 진리를 찾아 나섰고 진리를 찾은 분이다. 공자는 하늘의 명령, 즉 천명을 찾았고 천명 앞에서 개인의 사사로운 의견을 버렸다. 석가모니는 천상천하유아독존의 태도를 버리고 무아의 경지에 들어갔다. 예수는 자기를 부인하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생각을 버리고 국법을 따라 독배를 마시고 죽었다. 절대적 진리 앞에 자신을 해체시키고 진리에 순종하는 것, 이것이 바로 성인들의 경지이다.
문제는 진리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공자는 천지만물에 새겨진 하나님의 법을 찾아 들어갔고, 석가모니는 인간 본성에 새겨진 하나님의 법을 찾아 들어갔다. 소크라테스 역시 인간의 이성을 최대한도로 활용하여 절대 불변의 진리를 찾고자 하였다. 예수는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하나님의 법을 찾았다. 공자와 석가모니, 소크라테스와 예수의 가르침의 교집합을 찾아 들어가면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 그들이 발견한 진리는 절대 불변의 것이었다.
포스트모더니즘, 가치상대주의의 시대, 많은 사람들이 절대 진리를 부정하고 각자 자기 생각에 옳은 대로 살아가고 있다. 무의무필무고무아의 가르침을 읊조리며 불변의 절대 진리를 찾아야 할 때이다.